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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Dec 27. 2023

다음이면 어때


젊은 여자는 흑흑흑 소리 내어 울고 있었고 남자는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아니.... 그게.... 의사는 신이 아니에요"

"선생님? 그래도요. 어떻게 방법이...."

설명하던 의사나 듣고 있던 여자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최선을 다할 수는 있지만 손님이 준비한 사진으로는 도저히.... 아, 죄송합니다만 이번 생애에서는.... 다시 태어나셔야...."

눈물범벅이 된 여자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절박했고 간절했다. 설명을 이어나가는 의사의 말을 가로막고 뚝뚝 눈물을 쏟았다. 안타까웠지만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득을 해야만 했고 포기를 시켜야만 했다. 쉽지 않겠다 싶어서 절박한 마음이 드는 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엑스레이 사진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끝내

"안타깝지만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하시죠"

급하게 말을 맺었다.

어쩌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매달리고 떼를 쓴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해서 꿈꾸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의술이 마술을 부리는 세상이었지만 대체불가의 꿈은 헛된 꿈에 불과했다. 바리바리 돈을 짊어지고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녀의 꿈은 무참히 무너졌다.

꿈 하나 품고 사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따져보지도 못한 꿈 하나 야무지게 끌어안고서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얼토당토않은 꿈이구나 바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밤을 지새우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었다. 코피라도 한 됫박 쏟아내며 매달렸다면 다음이 있을 테니 힘을 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겠지만, 계절처럼 때가 되면 막연한 기대 한 줌 두리뭉실 버무리고서 세월아 네월아 꿈을 꿨다. 좋은 결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요행을 꿈꾸는데 '옛다, 너도 하나 받아라!' 던져지는 고깃덩이는 없었다. 바랄 걸 바라야지! 스스로 자책하다가도 지병처럼 계절이 돌아오면 허무맹랑한 꿈 한 자락 펼쳐놓고서 뜬 구름 잡는 꿈을 꾸었다.

"이보시게? 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꿈이란 게 말이야 영 요원해 보이네. 그러니 다음 생애에서나 한 번 꿈꾸는 게 어떻겠나?"

귓구멍이 간질간질거렸다. 언 놈이 욕지거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에라 이 한심한 놈아? 정신 차리고 살아라!

사주팔자에 목숨을 거는 건 아니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살아가는 꼬락서니도 다 타고난 팔자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누구는 일에 미쳐서 살고, 누구는 자린고비 아등바등 아끼는 게 행복이고, 또 어떤 녀석은 흥청망청 골든벨 딸랑이는 소리에 오르가슴을 느끼기도 해서 그렇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다고 뜬 구름으로 떠돌다 마른 대지에 단비로 내리는 것도 좋겠다 꿈꾸는 놈이면 또 어떨까 싶었다. 봄날의 헛된 꿈 하나 가슴 깊이 품고서 남자는 잠을 청했다.

"까짓 거 이러다가 다음이나 기약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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