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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언 May 10. 2019

주간영장류관찰기 - 입원병동   



짧은 입원생활동안 가장 강렬했던 건 소리였다. 내가 입원했던 12층 병동에는 열 개 남짓한 병실이 있었는데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환자분들이었다. 새벽이면 맞은편 병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잠을 깨야 했다. “나~쁜년! 니가 그랬지~” “아니 이 할배가 뭐라하시노!” 성미가 괄괄해보이는 할아버지 환자분이 소리를 지르면, 간병인 역시 못지 않은 소리로 응수했다. 처음엔 부부싸움인줄 알고 깜짝 놀라 의료진이라도 불러야하나 싶었지만 이내 익숙해져갔다. 두 분은 내가 퇴원하는 순간까지도 싸우고 있었다. 



 “부산에 가자 부산에 가자...” 이튿날 잠을 깨운 건 어떤 할머니의 애절한 목소리였다. 부산에 가자, 부산에 가자... 뭐 타고 가실거예요? 하는 간호사의 물음에 할머니는 대답했다. 우리 아저씨가 밖에 차 세워놨다 부산에 가자... 부산 가면 뭐 있으신데요? 부산 가면 유치원 있다 부산에 가자... 끊임없이 부산에 가자고 하던 할머니는, 아침만 드시고 출발하자는 다독거림에 다시 병실로 돌아가셨다. 아마 아침을 잡수시고 나서는 부산에 가야한다는 것도, 할아버지가 차를 세워 놓으셨다는 것도, 부산에 다시 가보고 싶은 유치원이 있다는 것도 모두 잊으셨을테지만. 



 새삼 KBS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병실이 문을 열어두고 지낸터라 어디에서 뭘 하는지, 뭘 보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엔 <전국노래자랑>에서 아이유의 좋은날 3단고음을 뽐내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온 병동에 울려펴졌다. 진품명품을 지나 몇 개의 낮 뉴스 프로그램이 나른하게 오후를 채우고 나면 드디어 하이라이트. 병동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KBS주말극이다. 덕분에 나도 시청률 50%를 넘본다는 <하나뿐인 내편>을 접했다. 최수종 유이 주연의 간 이식 드라마. 단 2회차를 봤을 뿐인데도 인생드라마로 등극했다. 충격적인 대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너 우리 아들한테 간 줄 수 있니?” (토끼와 용왕님인가??) “우리 이러면 안되잖아요. 외국으로 도망가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이혼하고 다시 만나는 부부의 대사. 네에??). 여튼 절절하게 간을 꾸러 다니는 어머니 역할에 열연을 펼치는 중년 연기자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이름이 도란이인데, 돌아서 도란이라고 지은건가...욕하면서 보는 게 주말드라마라더니 집에 돌아와서도 이 드라마가 보고 싶었다(하지만 아기가 자고 있어 볼 수 없었다).  



 <하나뿐인 내 편>의 간 꾸러 다니는 소리가 잦아들면, 병동의 일주일 역시 끝나간다.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열려있던 문도 스르르 닫힌다. 다시 아침이 되어 환자식이 보급될때까지는 고단한 잠에 빠져드는 시간. 병동은 다시 고요해진다. 나이트 근무를 서러 나온 간호사들의 교대소리, 환자와 보호자들의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링거줄을 교체하러 들어오는 의료진들의 문 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복되는 부산 가자, 이 나쁜 년 니가 그랬지, 그리고 KBS의 아침뉴스를 알리는 중저음 앵커의 목소리. 휠체어 끄는 느릿한 발걸음들 위로 주말이면 다시 들려올 도란이의 울음소리. 짧았던 병원 생활의 잊을 수 없는 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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