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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Sep 30. 2016

"Good" OR "Looks good"

대청소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보면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스템과 규칙을 가진 공간들을 만나게 된다. 대개 오너(owner)와 매니저의 성향을 많이 타는데, 그중에서도 오늘은 전반적인 위생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 참이다.



대개 깨끗한 곳은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해서 피곤하고 더러운 곳은 더러운 대로 비위가 상해 견디기 힘들다. 매일매일 쓸고 닦고 씻고 삶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곳도 있었고, 아는 사람이 놀러 온다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리던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이 낫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피곤하지만 깨끗한 곳이 좋다. 가게가 깨끗해질수록 다크서클이 짙어지지만 적어도 손님에게 음식을 내놓는 것에 떳떳할 수 있고 청소를 끝낸 후에는 나름의 보람도 있다. 반면 더러운 곳은 가끔 몰래 따라나가 두 손 꼭 잡고 다신 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고, 심하면 음식을 내놓으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쨌든 깨끗해서 깨끗해 보이는 것은 좋지만 깨끗하지 않은 곳을 '깨끗해 보이게' 하는 일은 정말이지 석연치 않다. 깨끗하기는 여간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 아닌 반면 깨끗해 보이기는 매우 쉬운데, 지시에 따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에 동참하는 기분은 범죄 공모자나 방관자라도 된 양 찝찝하다. 쉽게 얻은 결과로 눈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는 일은 잠자코 견디기가 힘들다. 아- 쓸데없이 정의감에 불타며 사는 일은 괴롭다.






"Keep clean"   OR   "Looks clean"



요즘 일하는 카페의 오너도 청결 상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유난히 깔끔을 떤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쳐도 그렇다. 우스운 것은 언제나 그쪽에서 먼저 "Keep clean"을 요구한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관리하는 모양새를 들여다보면 혹시 서로가 Clean의 정의를 다르게 하고 있거나 단어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떠오르곤 했다. 아무래도 그가 요구한 것은 "Keep clean"보다는 "Looks clean"에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결론.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청결상태가 탐탁지 않았음에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에는 변명 같은 이유들이 있다. 첫째, 내 일 아니라는 안일한 마음이었고 둘째, 마음먹고 청소를 하기엔 잡다한 일이 바빴으며 셋째, 무엇보다 남의 가게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해서 불편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노력을 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엔 웬일인지 먼저 대청소를 하겠다고 나서더라. 듣자 하니 크리스마스 시즌  정부차원의 대대적인 위생 검사가 시행되는 모양이었다. 정부의 강제개입으로나마 청소를 하게 되다니 이렇게 기쁘고 다행일 수가 없다. 애초 예정된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게되었지만 나는 옳다구나, 쾌재를 불렀다. 이 기회에 경증 정리벽, 세미 결벽증 환자로서 Clean이 어떤 상태를 뜻하는 건사장 내외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곧 별다른 대꾸도 없이 쪼그리고 앉아 키친 구석구석의 기름때와 찌든 때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손 끝에 힘을 실어서 바득바득. 어찌나 열심히 닦았던지 두 시간 가량의 청소가 끝난 후엔 손가락이 저리고 팔이 후들거렸지만 반짝이는 주방을 보면흐뭇했다. "이런 게 Clean이란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일에도, 남의 일에도 참 소극적인 인간이었다. 굳이 나서 번거롭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거다.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투쟁하지 않았고 내 선의 작은 노력들에 안주하고 만족하며 결과적으로 부조리에 순응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 수 없는 인간이었다.


'깨끗해 보이기'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관조하며 자문해본다. 나는 어떤 가치를 향해 살고 있는가. Good을 지향하면서도 Looks good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이따금 찾아오던 불안감도 모두 "Looks good"을 의식한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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