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지나다 사원 앞에서 수레를 밀어 올리고 있는 노점상을 만났다. 거대한 수레가 버거워 보여 별생각 없이 수레를 잡아끌었다. 놀란 눈을 하고 고개를 든 아줌마가 별안간 너무도 환하게 웃으며 컵쿤 나카-하고 외쳤다. 눈이 부실만큼 밝은 미소였다. 놀람과 기쁨으로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싱긋 웃으며 돌아서다 웃는 얼굴 몇을 더 마주했다. 찰나의 도움으로 이런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니, 심장이 뛰었다.
오후에는 강 건너 사원에 갔다. 이전에 J가 듣고선 '기분이 좋아'하고 말했던 불경 소리가 듣고 싶었다.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매번 고요만 마주하고 돌아온 터였다. 이번엔 제시간에 잘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멀리서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을 벗고 한달음에 불전(佛殿)의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사원은 주황색 승복을 두른 동자승과 두 손을 모으고 앉아 불경을 외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천장으로부터 길게 늘어진 선풍기가 조용히 회전하며 바람을 만들었다. 묵직한 저음과 가녀린 고음, 모두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소리가 되었다. 멀뚱대는 나에게도 불경이 쓰인 책이 한 권 건네 졌으나 곁에서 보여주는 페이지 숫자마저도 구분하지 못해 한참을 책장만 펄럭였다. 읽지도 못하는 글자를 열심히 손으로 따라 짚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편안했다. 슬몃 눈을 감았다. 이차원의 소리가 삼차원의 울림으로 확장되며 주위를 감쌌다. 끝없는 심연이 아니라 구름이나 꿈속, 어딘가 안전한 공간으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속에 둥실둥실 머무르며 소리의 결을 따라 오래도록 흔들렸다. 아마도 일상적인 행복이나 건강이나 안녕 같은 것을 기원하고 있을 사람들의 소망이 느껴졌다. 따뜻했다. 꼭 모은 두 손에서 어떤 기운들이 피어 나오는 것 같았다. 작은 사원이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무언가로 가득 차올랐다. 불경을 외는 시간이 끝나고 10분간 완전한 침묵이 흐른 후에도 그 안전하고 고요한 시간의 여파에서 쉬이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절로 ‘이너 피스(Inner peace)’를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아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아둔한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 어떤 믿음으로 작은 사원에 모여들었을까? 노승이 천천히 자리를 뜨고 하나 둘 사람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게 책을 건넸던 사람과 함께 불전을 나가는 사제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배에서 들이치는 비를 맞으면서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꺄르륵 꺄르륵 웃어댔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 보트에서 내려서는 홀딱 젖지 않기 위해 달음박질을 쳐야 했다. 금방 그칠 비 같지 않았다. 잠깐 선착장을 서성이다 지척의 바에 들어가 맥주를 한 잔 시켰다.
비가 쏟아지는 강의 풍광이 개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