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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Nov 23. 2016

REMEMBRANCE DAY

THE DAY OF REMEMBER_1


지난 금요일(11월 11일)의 일이다.


열한 시 즈음 갑자기 늘 듣던 POP이 아닌 낯설고 묵직한 느낌의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소란스레 엇갈리며 발길을 재촉하던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걸음을 멈추었고, 커피를 마시던 손님들도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 여전히 떠드는 그리스 할아버지를 향해 "조용히 해, 이 영감쟁이야." 버럭 소리를 질렀고, 어깨를 으쓱한 할아버지마저 멋쩍게 몸을 일으킨 후엔 사뭇 경건한 음악만이 공간을 휘감았다. 모든 것이 정지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주문을 받으려 카운터에 서 있던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간 속에 산 것이 굳어버린 광경은 기묘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모두가 미동도 없이 자리에 선 채 제각각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고서야 사람들은 부스럭대며 다시 몸을 움직이고 가던 길을 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내부는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에 적잖이 놀란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대뜸 눈 앞의 손님에게 물었다. 그가 웃으며 들려준 말에 따르면 11월 11일은 remembrance day란다. 영령 기념일, 혹은 종전기념일이라고도 하는데 전쟁 중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는 날이라고 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1을 회상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매해 11시에 2분간의 묵념이 관례란다.


내가 목격한 것은 2분간의 묵념이었다. 모두가 멈추어 선 이유가 오래전 전쟁에 희생된 군인을 기리기 위해서라니 머릿속에 뎅-하고 종이 울렸다. 그것이 어떤 마음일지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과 1차 세계대전을 겪었을 이들 사이에 사적인 연결고리가 없을 것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특정 다수가 불특정 다수를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쓰고 있었다. 실체 없는 누군가를 존중하고 기억하려는 마음이 아득했다.












한동안 그 광경을 자주 떠올렸다.

그로부터 물었다.



기억은 무엇인가?

기억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하여 기억하는가?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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