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이드 (Allied, 2017)
연말이 지나니 슬슬 여유가 생겨서 한동안 뜸했던 영화관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액션은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는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장르와 관계없이 오며 가며 눈에 밟힌 포스터에 홀딱 빠져 홀린 듯 예매하고 말았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에 불이 켜지도록 헤어질 나오지 못했다. 와아- 탄성을 흘리며 집에 와선 검색까지 했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열심히 찾아보는 타입이 아님에도 로버트 저메키스 (Robert Zemeckis)의 전작들을 꼼꼼히 둘러봤다.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13 고스트 Thir13 en Ghosts, 2001>,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2000>, <하우스 오브 왁스 House Of Wax, 2005>, <플라이트 Flight, 2012>, <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2015> 그리고 <얼라이드 Allied, 2017>
으앗, 이거 내가 좋아하는 영환데!
어머, 이것도 이 감독 거였어?
우와, 이 영화는 열 번도 넘게 봤는데.
아아- 명작이지, 명작.
줄줄이 감탄에 호들갑을 떨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둘러보고서 다짐했다.
그의 신작은 물론 전작도 모두 챙겨보겠노라고.
※스포 주의
애초에 내가 홀딱 반한 건 마리옹 꼬띠아르였다. 우아한, 매혹적인, 기품 있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표정, 눈짓, 손짓과 몸짓. 사실 그녀가 뿜는 고혹적인 아우라에 영화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취해 있었다. 그러고선 러닝타임 내내 아름다워, 아름다워-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커다란 스크린 속의 그녀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숨까지 죽여 따랐다. 그러면서 느꼈다. 내 안에 이글대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망. 탐미(耽美).
아- 미의 기준이야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 적이 있던가.
그 욕구가 극단으로 치달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는가.
영화는 사막으로부터 시작한다. 뜨거운 한줄기 바람마저 처연하게 느껴지는 고립된 공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사구(砂丘)를 건너 탑승한 차 안에는 정적이 흐르고, 낯선 이들 간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교묘한 신경전이 오간다. 누구도 나를 모르는, 그리하여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곳.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 맥스( 브래드 피트)는 마리안(마리옹 꼬띠아르)을 만난다. 그리고 곧, 불가피한 모래폭풍처럼 사랑이 그들을 덮친다.
카사블랑카에서 임무가 끝난 후 둘은 런던에서 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딸과의 행복한 일상도 잠시,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고난이 찾아온다. 마리안이 독일의 스파이라는 정황이 포착되어 정해진 시간 내에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의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맥스. 느닷없이 떨어진 의심의 씨앗은 견고했던 관계를 가차 없이 파고든다. 그의 변화를 감지한 마리안의 공포와 부정하고픈 진실로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맥스의 불안에 바라보는 내가 더 괴로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 싹을 틔운 의심은 급속도로 퍼져나가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모든 상황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 몰아간다. 의심과 오해와 빗겨나간 진실이 운용된 자리에는 거대한 상처와 흔적이 남는다. 결코 돌이킬 수 없고 무엇으로도 지워질 수 없는.
맥스는 그녀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다 감옥을 찾은 맥스는 마침내 감금된 대원의 증언을 확보하지만 그것은 찾아 헤매던 무고의 증명이 아니라 외면하고픈 진실이었다. 돌아온 그는 마리안을 추궁한다. 그녀가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사실을 고백했을 때 맥스는 배신감과 막막함, 분노로 주먹을 치켜들고 만다. 말 못 할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멈춰있던 그가 무너지듯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 하아- 깊은 안도가 몰려왔다. 그가 여전히 사랑에 눈멀었음에, 어리석어 그녀를 선택했음에 그저 기뻤다.
맥스는 상부의 명령을 따르는 대신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순조롭던 도피는 난관에 부딪히고, 그것을 눈치챈 마리안은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아-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죽음으로 증명한 그녀의 사랑은 자체로 거대한 비극이었다. 놀란 가슴을 짓누르며 스크린을 응시했다. 멈췄던 숨을 내뱉으며 끄응- 속을 앓았다. 딸에게 보내는 마리안의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고 맥스와 딸의 뒷모습, 탁자를 가득 채운 사진이 비친다. 쓸쓸해. 쓸쓸하고 아프고 사랑스러워. 마리안의 빈 자리에 뻥 뚫린 공허가 오래도록 소용돌이쳤다.
전쟁(고난 혹은 불행)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영화는 전쟁과 삶을 반복적으로 하나의 프레임 안에 배치한다. 폭격으로 무너진 병원을 빠져나와 아이를 낳는 마리안, 시끌벅적 파티가 벌어지던 와중 추락하는 독일군의 비행기, 아직도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전쟁의 잔해 옆에서 첫걸음마를 떼는 애나.
수많은 죽음, 위험과 불안,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음악을 연주하고 파티를 연다. 바지런히 삶을 지속한다. 영화는 그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살아가고, 살아가야 한다고. 죽는 날까지 그걸 멈출 수는 없다고. 산 것에게는 삶을 중단할 권리가 없다고 가만가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삶의 무게가 한 편 기쁘고 한 편 고단해 그저- 울고 싶었다.
아- 아름답다. 슬프도록 아름답다고 되뇌며 영화관을 나섰다. 여전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전쟁', '스파이', '배신'과 '사랑'이라는 뻔한 소재를 그러모은 각본이 가진 클리셰는 감독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통해 새 생명을 부여받는다.
사랑은
신념을 외면할 만큼 아둔하고
삶을 포기할 만큼 어리석다.
그러나 거대한 상실의 슬픔을 딛고 살아갈 만큼 강하기도 하다.
그래서 위대하다.
결국은 산산이 부서지게 될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껴안게 되더라도
그래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본래 어리석은 것이 인간의 본성일진대,
사랑하여 더 어리석어지지 않을 이유가 있나-
합리화하면서 오래도록 바보 같은 오기를 부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