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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un 12. 2017

전혀 다른 꿈

다 가질 순 없어서, 결정느림보


일 년을 조금 넘겨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 승무원이 비행기가 한 시간 연착되었음을 알려왔다.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고 기다리는 사람도 급한 일도 없었으므로 아무래도 좋았다. 천천히 눈을 깜빡여 '알았습니다' 답하고 고개를 돌리자 탑승 게이트 오른편으로 작은 피아노가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가 배낭을 내팽개치다시피 던져두고 의자에 앉았다. 조심스레 건반의 홈을 쓸어보다가 연이어 몇 개를 눌렀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왼손을 마저 올려놓고 손이 기억하는 단 하나뿐인 곡을 짚어본다. 그마저도 열여섯 마디를 채우기 전에 삐끗- 미끄러졌다. 음표 사이의 엉성한 빈틈이 맥락 없는 과거사만큼이나 허술했다.


 

Melbourne, AU (2017)

 


지난주에 친구가 날 더러


너처럼 '비정상'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은-


하고 말했다. 조금 다를 뿐, 이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나처럼 정상적으로-,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그저 이상함에도 총량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사니까 내가 더 열심히 이상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하는 궤변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자주, 전혀 다른 삶을 꿈꾼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낯익은 장소에 도착해 친밀한 얼굴을 마주하는 삶. A와 A'와 A''의 반복 속에서 소소한 이벤트 B와 신선한 일탈 C를 계획하는 삶. 일주일에 세 번쯤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곡 몇 개쯤은 매끄럽게 연주할 수 있는 삶. 따뜻한 원목의 가구가 있는 곳에서 익숙한 향을 맡으며 잠드는 삶. 가끔은 친구를 만나 흥청망청 취하기도 하는 삶.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을 사들이고 전시와 영화, 콘서트 따위를 챙겨보는 삶. 신뢰하고 애정 하는 사람들을 떠나지 않는 삶. 일상의 관성에 안정을 느끼는 삶. 다음 선택에 대한 가능성을 쉴 새 없이 타진하지 않아도 되는 삶.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삶. 핸드폰을 꺼내면 전화할 사람이 있는 삶. 봄의 화사함과 한여름의 햇살과 가을의 하늘, 겨울의 바다를 빠짐없이 챙길 수 있는- 삶.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유에 발이 묶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노마드로 살며 쌓아온 삶의 근거를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중요했던 가치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통념에 의해 부정당하고 재단되고 평가된다. 어느새 나는 '옳지 않'거나 '이상한' 것이 되어 있다. 나는 이 상태를 꿋꿋이 견딜 만큼 단단하지 못하다. 걱정과 우려는 빠르고 강하게 파고들어 애써 쌓은 확신과 자기애를 무너뜨리고 혐오와 자격지심을 심는다. 환멸과 허무, 냉소가 뒤따른다. 쉴 새 없이 요동치는 마음 앞에서 매일이 혼란스럽다. 더 오래 도망칠수록, 다른 삶은 더 멀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쉬이 현실로의 이주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뿌리 없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관성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무능에 대한 자각과 자신감 결여 때문이기도 하다.













호주에서의 생활이 끝나기 두어 달쯤 전에 슬럼프 비슷한 무의욕 상태에 빠졌었다. 도무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아서 이것저것 들쑤시다 잠자리에 들기를 반복한 것이 한 달.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어떤 끝을 향해 맹목적으로 전진하던 기간이 끝나고, 다시 넘치는 정보를 취합해 최선의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과 강박에 짓눌렸던 것 같다. 온종일 수많은 선택지를 늘어놓고 부족한 경험과 능력, 외면할 수 없는 기대, 포기할 수 없는 자유 등의 가치를 저울질하다 보면 진이 다 빠졌다. 그렇게 골머리를 썩히다 내린 결론이 단순하게도 '하고 싶은 걸 하자' 따위의 것이었다. 그때는 다시 떠나는 일에 대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불안정과 불확실마저 즐거웠다.


그리고 다시 한 달. 전혀 다른 마음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아주 다른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 잠 안 오던 어느 밤에는 원룸을 찾아보았고, 이튿날은 역시 떠나야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다음 날은 잡코리아를 뒤적이고 있다. 그때는 못 견딜 것 같던 일을 지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오만일까.








어쨌거나 결국은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다.

사람은 잘 하는 것보다도, 하고 싶은 것보다도, 그저 선택한 것을 하며 살아가니까.


오늘은, 역시 떠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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