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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Dec 21. 2015

트레인 패밀리

#인도, 바라나시(India, Varanasi) : 8000시간의 이야기



명성이랄까, 악명이랄까.      



인도의 기차는 긴 역사만큼이나 화려한 사건 사고로 여행자의 입을 타고 전해져 왔다. 물론 과장과 오해가 보태어졌겠지만 타 보지 않은 이는 이야기만으로 겁을 집어먹는 경우가 태반. 사서 고생을 즐거이 하며 스스로를 한계로 내모는 것을 기뻐하는 나는 단 한 번도 구전되어오는 음산한 이야기들을 괴념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주 오랜만에 타는 기차에 맘이 설레어 역으로 향하는 발길이 가볍기까지 했다. 부산스럽다기보다 미어터진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 역사에 들어서며 소피는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캘커타의 하우라 역은 여타 다른 지역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거대한 역사를 가득 채운 수많은 인파와 소음, 악취, ‘바나나는 길어, 긴 것은 기차-’ 하는 따위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줄줄이 기차까지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인도의 기차 시스템은 놀랍도록 체계적이다. 물론 열차의 컨디션에 따른 등급도 제법 다양하다. 그러나 쾌적한 환경보다도 현지인들과 반강제로 함께 하게 되는 기나긴 이동시간과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대개 SL(슬리퍼: 침대칸. 여행자가 가장 흔히 이용하는 칸으로 승무원이 없고 걸인과 노점상의 출입 또한 자유롭다) 등급을 이용한다.

      

이번에도 습관처럼 SL을 찾았다. 늘어선 기차를 따라 한참을 묵묵히 걸었다.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출발한 열차는 익숙한 소음들로 덜걱대며 선로 위를 미끄러졌다. 이따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기차가 요란하게 스쳤고, 선로 밖은 까만 밤만 가득했다. 주위 사람들은 커다란 가방에서 차곡차곡 먹을거리를 꺼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 역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식사를 끝낸 승객들은 침대를 펴 제각각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갔다. 내게 허락된 낮은 공간에선 허리는커녕 목도 펼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얇은 담요 속에 몸을 욱여넣었다. 뒤척이는 소리도 잠시, 겹쳐 누운 승객들은 덜걱대는 기차가 거대한 요람이라도 되는 양 금세 잠에 빠졌다.









               

아침은 다른 곳 보다 더 이르게 기차를 찾는다. ‘짜이, 커피’를 끈질기게 외치는 행상을 선두로 온갖 소음이 쏟아져 아침에 온 줄은 진작에 알았으나 새는 바람에 굳은 몸은 일어나고 싶지 않아했다. 기어이 모르는 척 담요를 끌어올렸지만 얼마 못가 ‘바라나시 정션(Varanasi staion)하는 소리가 귀에 꽂혀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9시 30분 도착이라 했으니 늦으면 몰라, 새벽엔 도착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역시는 역시. 바라나시를 향하는 기차라던가- 하는 안내방송이었다.

      

기차의 맞은편 좌석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20일짜리 휴가를 다녀오는 부부가, 측면 좌석에는 형의 결혼식에 가는 가족이 앉았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살린은 1년에 두 번, 방학마다 남쪽으로 휴가를 떠난다고 했다. 올해 역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바라나시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나란히 앉은 모자를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서른, 어쩌면 마흔을 넘겼을 아들도 노쇠한 어머니에겐 여전히 어린아이인 모양이었다. 노인은 아들이 지나는 잡상인을 멈추어 뭐라도 살라치면 연신 손짓으로 그를 불러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이따금 지폐 몇 장을 쥐어주며 과자나 과일 따위의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돈은 되었다며 손사래를 쳐도 그뿐이었다. 짐짓 엄한 표정을 하면 아들은 잠깐 곤란한 얼굴을 하고는 얌전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매번 그녀의 말을 따르는 아들도,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어머니도 보기가 좋았다. 오래된 TV 드라마 같은 그들을 지켜보며 나도 슬몃 웃었다.


짧은 밤을 지났음에도 창밖은 여전히 짙은 안개로 창백했다. 하염없이 달리는 느린 기차 안에서 안개처럼 뿌연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좋은 음악과 좋은 사람과 좋은 책과 좋은 영화가 있는 카페를 하고 싶다거나, 이따금 떠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 혹은 나를 앞서 걷던 그의 발자욱을 떠올려 되밟아보거나, 마치지 못한 고민들을 질겅질겅 씹다가 스치는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는 식이었다.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슬며시 스러져 안개 속에 녹았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생각들을 다시, 허망하게 띄워 보냈다.










INDIA(2015) _기다림, 기다림, 기다림의 시간





손 안의 것을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 특히 그것이 먹을 것인 경우에는 더욱더. 무언가를 쥐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누구에게나 묻곤 했다. ‘먹을래?’


열차는 자꾸만 연착이었다. 슬리퍼 한 칸의 승객이 대략 90명, 그 외 입석과 AC칸이 있으니 대충 계산해도 1000명 이상의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레일 위에 묶여 있었다. 언제 출발하는지는 누구도 몰랐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듯했다. 모두가 태연했다. 옆 칸의 단발머리 꼬마는 좁은 복도를 런웨이 마냥 누볐고, 아저씨들은 긴긴 신문을 다 읽자 요란하게 코를 골며 낮잠을 자거나 무언가 시답잖은 주제의 이야기에 과하게 열을 올리거나 했다. 어련히 일이 있어 멈추었겠거니, 언젠가 때가 되면 출발하겠거니. 그들 사이엔 무언의 믿음과 신뢰가 있는 것 같았다. 


애초 도착 예정이었던 시간은 넘긴지 한참이었다. 언제 즈음엔 출발하려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기차 안에서 시간은 잔인하도록 더뎠다. 11시가 지나자 허기진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하나 둘 기차를 나섰다가 과자 봉지 따위를 들고 나타나거나 꽁꽁 잠가 둔 가방에 손을 찔러 넣고 깊숙한 곳을 버석여 미처 못 먹은 간식거리를 꺼내기도 했다. 이전엔 일면식 없던 사이었어도 나에겐 무릎을 맞댄 열 명의 인간이 그러니까, 동지 같은 거였다. 가진 거라곤 고작 과자 몇 봉지가 다였지만 눈으로, 손짓으로 자주 물었다. ‘먹을래?'



나눠 먹는 과자 따위에서도 동지애가 싹을 틔운다니 신기한 일이다. 한량의 기차에 들어찬 좁은 좌석에서 무릎을 맞대고 열세 시간. 거기다 계속되는 연착에 더해지는 시간이 +α였다. 미궁으로 빠져드는 도착시간 또한 우리의 동지애를 굳히는데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권하는 몸짓과 눈길이 수더분했다. 특별할 것 없지만 나누어먹고 함께 기다리면서 남모를 동지애는 자꾸만 두터워졌다. 우리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함께 했다.


덧붙이자면 기차 안에는 나보다 더한 오지랖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무언가를 권하는데 있어 매우 강경했던 살린의 어머니. 나중에 나는 그녀를 마마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녀는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꺼낼 때마다 일부를 나의 손에 쥐어줬다. 한 번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무언가를 단호히 말했는데, 살린이 전하길 ‘이 곳에 함께하는 우리는 가족이고, 너는 나의 딸이니 나누어 먹는 것이 당연하다.’ 하는 말이었다. FAMILY. 그의 입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우리는 같은 기차에서 마주 앉은 열 몇 시간의 인연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엄마, 배고프고 지루한 기차에서 그녀는 나의 엄마가 되었다. 몰려오는 허기는 과자로 채우기에 부족했어도 늘어난 여정은 한없이 풍요로웠다.





              






열차는 정차한지 세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야 느리게 출발했다. 창살 밖의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역사를 벗어난 창밖으로 들판이 나타났다. 칙칙한 들판 위에 알록달록 사리를 차려입은 세 여인이 지났다. 그녀들이 곧 인도의 색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밖을 향했다. 언뜻 침묵이 흘렀다. 좌석에 앉은 채 눈으로 그녀들의 뒤를 쫓았다. 해가 중천에 떠있었지만 어쨌든 옷깃을 여며야 했다. 이렇게도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아직도 하루가 반절 가까이 남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낡은 기차에는 녹슬지 않은 것이 없었다. 좌석 위에 삐뚤빼뚤 찍혀있는 조각난 숫자부터 좌석 위의 손잡이, 창살, 선풍기, 형광등의 덮개까지. 모든 것이 녹슨 기차 안에서 녹슬지 않은 사람들이 소란스레 살아 있었다. 말하고 웃고 먹고 맑은 눈을 굴리며 숨 쉬고 있었다. 무언가는 산화되어 낡아갔고 무언가는 호흡하여 늙어갔지만 모두가 함께 시간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낡은 것과 늙은 것이 한데 있었다.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가늠할 수 없는 풍경을 내다보며 자주 궁금했다. 실상은 그렇다. 스마트한 세상이니 어플 하나만 설치하면 나의 위치쯤은 거뜬히 알 수 있다. 그리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여전히 어디인지 모른 채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길어지는 기다림 속에서 나는 시시때때로 멈추어 서는 이 열차가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그러면서 슬쩍 너를 다시 만날 날을 함께 기다리기도 했다. 기다림의 끝을 넘겨보는 일이 기뻤다. 기다림이 주는 기쁨을 GPS로 표시할 수는 없었다.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 한 줄을 스쳐지난 상념을 모두 모아 이야기로 엮었다면 천일야화보다도 훨씬 더 긴 이야기가 되었을 거다. 최소한의 승객을 1000명이라 가정했을 때, 무려 8000시간이 연착되었다. 그 모든 기다림이 이야기가 되었을 터였다. 오후가 한참 지났어도 걷힐 줄을 모르는 안개 때문에 창밖은 여전히 희미했다. 기다림이 지루해 불어오는 바람의 결 따위를 느껴보려 애쓰다가 문득 나는 여행 중이라는 자각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낡은 기차, 기다림, 덩그런 눈들, 어스름한 풍경-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놀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이 그대로 나의 삶이자 시간이 되는 풍경. 어쩌면 새로이 만나는 것들에 놀라지 않은 이유는 무뎌졌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당연하고 익숙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차는 애초 도착 시간을 한참 넘겨 바라나시에 닿았다. 결국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기차 안에서였다. 기차에서 꼬박 하루가 지났다.

          

오랜만에 도착한 도시는 낯설었다. 늘 걸었던 길이 분명한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결국엔 길을 잃고 말았다. 응당 낯설지 않아야 할 것이 낯선 것이 너무도 낯선 경험이라서 혼란하고 피곤했다. 희뿌연 하늘에는 다시 손톱 달이 걸려 있었다. 또 다른 한 달이 지난 모양이었다. 어두운 골목은 여전히 붐비고 시끄러웠다. 여전한 곳에서 길을 잃다니,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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