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쭐라롱콘(Chulalongkorn) 대학에 가기로 했다.
한참 기다려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맞닿은 어깨와 무릎이 금세 뜨거워졌다.
시트도 바람도 사람들도, 늦은 오후와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J는 곧 졸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늘어진 온기가 좋아서
내리깐 속눈썹이 고와서
부채질도 않고 숨을 죽였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좋다.
네가 좋아한다는 길을 걷는 것도, 보는 것도 좋다.
쭐라롱콘은 왕립대학교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쯤 될까.
농구를 좋아하는 J는 이따금 체육관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한다고 했다.
곧 공이 튀어 오르는 소리와 운동화가 바닥에 끌리며 만드는 날카로운 마찰음,
가벼운 활기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J는 나더러 대학 구경을 하고 오랬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선풍기 앞 벤치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아무래도 더웠던 모양이다. 더위는 내겐 정말로 쥐약이다.
어쨌든 캠퍼스를 둘러보는 대신
재빠르게 달리거나 공을 튀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거나
까무룩 딴생각에 빠지거나 했다.
나는 팀플레이의 묘미는 잘 모르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얼굴들이 만족감으로 미끈거리는 것은 알아챘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깊고 아픈(아플 법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꺼내어 놓았다.
아무렇지 않은 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걸까, 아무렇지 않아진 걸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생각했다.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혀 끝에 맴도는 말을 붙잡지 못해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말을 마친 J는 나에게 뭔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실낱같은 것들이 떠올랐지만 하나같이 결말을 찾지 못해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나,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나는 '말하기'에는 재주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