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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by 잉지


오늘은 쭐라롱콘(Chulalongkorn) 대학에 가기로 했다.


한참 기다려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맞닿은 어깨와 무릎이 금세 뜨거워졌다.

시트도 바람도 사람들도, 늦은 오후와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J는 곧 졸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늘어진 온기가 좋아서

내리깐 속눈썹이 고와서

부채질도 않고 숨 죽였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다.

네가 좋아한다는 길을 걷는 것도, 보는 것도 좋다.






쭐라롱콘은 왕립대학교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쯤 될까.

농구를 좋아하는 J는 이따금 체육관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한다고 했다.

곧 공이 튀어 오르는 소리와 운동화가 바닥에 끌리며 만드는 날카로운 마찰음,

가벼운 활기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J는 나더러 대학 구경을 하고 오랬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선풍기 앞 벤치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아무래도 더웠던 모양이다. 더위는 내겐 정말로 쥐약이다.


어쨌든 캠퍼스를 둘러보는 대신

재빠르게 달리거나 공을 튀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거나

까무룩 딴생각에 빠지거나 했다.


나는 팀플레이의 묘미는 잘 모르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얼굴들이 만족감으로 미끈거리는 것은 알아챘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깊고 아픈(아플 법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꺼내어 놓다.

아무렇지 않은 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걸까, 아무렇지 않아진 걸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생각했다.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혀 끝에 맴도는 말을 붙잡지 못해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말을 마친 J는 나에게 뭔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실낱같은 것들이 떠올랐지만 하나같이 결말을 찾지 못해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나,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나는 '말하기'에는 재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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