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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May 04. 2016

엄마,

언제까지나 부르고 싶은


엄마,


찬찬히 생각해보면 나랑 참 닮은 구석이 많은데

 어찌 이리 다를까 싶을 만큼 다르다.


그중에 하나가 부지런하다는 거다.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집순이다. 책 한 권 들고 따뜻한  한잔 내려서 소파에 기대면 내겐 그게 천국이다. 그런데 엄마는 집에 있질 못한다. 봉사도 가고 운동도 가고 놀러도 가고 아줌마들이랑 일명 '웃음치료(어딘가에 모여 어울리는 시간을 이렇게 얘기한다)'시간도 가져야 하고. 아주 가끔 약속 없는 휴일엔 또 청소를 하느라 바쁘다. '아, 쉬고 싶다.', '늦잠 자고 싶다' 하면서도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못 견뎌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가끔 어떻게 그렇게 집에만 있냐고 묻는데, 할 거 많다고 해도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눈치다.


올봄에도 그랬다. 아주 오랜만에 함께 보내는 봄이었다. 집 밖을 나서는 일이 드물어서 봄인가 알아챌 틈도 없었는데 엄마는 늘 어디에 두릅이 얼마나 컸니, 무슨 나물이 제 철이니, 쑥이 엄지손가락만큼이나 자랐니 하며 수시로 풀떼기들을 뜯어왔다. 내가 질색하는 벌레들과 함께. 그건 그것대로 일이 많다. 흙을 털어내야 하고 시든 잎을 가려야 하고 씻어서, 데쳐서, 이렇게 저렇게. 아니, 바쁘다면서 도대체 왜 자꾸 일을 만드는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이 나름의 해소이거나 그냥 제 철에 나는 것들을 두고 볼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새벽부터 뭔가를 잔뜩 뜯어온 엄마를 보며 엄마 친구 하나는 '그게 팔자라 그래' 하더라.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하면서도 아니고선 딱히 설명할 방도가 없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어쨌든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밥상만큼은 늘 봄이었다. 그런데도 난 아직 뭐가 뭔지 구분도 못한다. '김치가 도대체 몇 가지인 거야.', '많은데 왜 또 만드는 거야.'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다.






어제는 웬일인지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날 찾았다.


딸, 딸아- 평소보다도 애타게 찾는 것 같아 후다닥 문을 열고 나가니 엄마 왔어, 할 뿐이다.


-뭐야, 싱겁게.

하며 가방을 받아 드니 갑자기 풀썩 껴안는다.


-왜, 오늘 힘들었어?

물으니 그냥, 건강해서 고맙단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 그런가 보다. 오늘 만난 아이는 희귀병을 앓고 있단다. 일주일에 한  부산의 대학병원에 가서 600만 원씩 하는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제 겨우 10살인 그 애는 감기 같은 잔병치레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최대 기대수명이 15살 정도란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부모는 이미 오래전에 아이를 시설에 맡겼고 아이는 세금으로 치료와 돌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슬퍼도 울지도 못하고 이르게 철이 든 채로.


건강한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몰라. 아프지 않고 이렇게 자라 줘서 고마워.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한 게 최고야. 알지?


몇 번이고 울상으로 똑같은 말을 자꾸 한다.


-나 튼튼한 거 알잖아.


대수롭지 않은 척 답해그래도-, 하며 말끝을 흐린다.



꽃놀이를 다녀왔다. 엄마를 카메라에 담는 일은 처음인 것 같다, 산인 (2016)



곧 조금 긴 시간 엄마를 떠날 예정이다.


그 사실을 알린 후로 엄마는 예전보다 자주 내 손을 잡는다.

운전을 할 때, 길을 건널 때, 장을 볼 때도.


오늘은 그런 말을 하더라.


하루에 스무 번씩 엄마라고 불러. 엄마, 엄마, 엄마. 다녀오셨어요. 이렇게.


-그게 뭐야, 하니 1년 치 부를 엄마를 미리 불러달라고 한다.


-아니, 나 어디 죽으러가? 그리고 오늘부터 스무 번씩 불러봐야 1년 치 안돼.


그럼 50번씩 할래?


-어휴, 전화하면 되지.


전화가 되나?


-돈만 내면 되지.






나는 멋없는 딸이다. 인간으로서 20점쯤 된다면 딸로서는 0점.

 

그래서 엄마를 떠올리면 죄책감과 연민이 먼저 고개를 든다. 언뜻 계획도 생각도 대책도 없어 보이는 내게 떨쳐 버릴 수 없는 족쇄 있다면 


사랑과 연민으로 단단하게 엮인,

내 살처럼 맞붙어 떼어낼 수 없는

'엄마'라는 이름.



엄마는 자신과 나를 떼어서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가진 '내 새끼 마인드'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소유물로서의 나에 반발하면서도 매정하게 잘라내거나 외면하지 못한다.


엄마보다 내 삶이 더 중요해 배낭을 꾸리면서도 한편에 든 죄책감은 내려놓은 적이 없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가끔은 그 미련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다 미안해서 그랬다. 그 오랜 시간 나를 짓누른 건 엄마에게 진 빚까, 엄마의 걱정까?






나는 엄마의 기대에 맞춰 살 수 없어,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엄마의 구속은 사랑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뿌리칠 수가 없다. 담담한 척 거리를 둬도 내 것이 아닌 삶을 꿈꾸는 엄마를 볼 때면 어쩔 수 없는, 연민.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걱정과 염려, 은근한 강요는 잔인하다. '보호'라는 명목 아래 행해지는 개입은 끈질기고 혹독했다. 뿌리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사랑. 거기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나는 나를 포기할 수 없고,

엄마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지난 시절의 부채를 외면하기에 난 충분히 어른이어 떠나 있으면서도 때때로 울리는 전화벨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했다.









 



엄마, 그래도 나는 있잖아.
공무원이나 선생님 같은 걸 하면서 살 수는 없어.


지난번 떠날 때 엄마는 엽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소고기는 싫으니 잔치국수 먹으러 가자는 나나 고작 엽서를 보내달라는 엄마나 영락없는 모녀지간이네 하면서 픽- 웃었었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가 그런 걸 받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제법 자주 엄마 생각을 는데 한 번도 그 마음을 전한 적은 없더라. 친구에겐 그렇게 많은걸 주고 사소한 것들을 털어놓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엄마한텐 그게 잘 안된다. 이따금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면 몇 번이고 열어볼 엄마를 알면서도 선뜻 그러질 못했다. 어디 왕궁 앞에서 사진 한 장 찍는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미루고 미루다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언젠가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내게 한 번이라도 엄마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있다. 있는데, 없더라. 나는 엄마가 엄마일 때를 고려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엄마'일 때를 수도 없이 떠올렸지. 그러니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나는 많은 것이 두렵지 않고 또 많은 것이 그립지 않아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걱정이 많고 그리움이 많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뭐랄까, 엄마가 엄마고 내가 딸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인간이라서 생기는 문제라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어쩔 수 없지. 딱히 달라질 것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불균형한 관계에서 엄마도 나도 서로에게 일방적이기만 했던 건 아닐까.



그러면,

이젠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엄마도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될까? 그러면 조금은 수월해질까?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덜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말로 할 수 없어서 글을 남긴다.


사랑해. 미안하고 고맙고 설명할 수도 없는 복잡한 마음을 다 욱여넣어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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