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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May 20. 2016

시작도 끝도 아닌

마지막의 마지막


언젠가 한 번쯤 털어놓게 될 테지만 나에겐 몇 가지 강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끝을 보고자 하는 거다.






라군 근처에는 해안을 따라 뻗은 산책로가 있다. 어느 날은 풀밭에 드러누워 책을 읽다가 문득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긴 줄도 모르고 마냥 걷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나중에야 지도를 보니 2.5km쯤 되는 모양이었다. 초행길이라 얼마쯤 왔는지 가늠도 어려운데 불쑥 해가 졌다. 그 와중에 석양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짙은 잎사귀 너머 사라져가는 해를 바라보느라 도저히 서두를 수가 없다. 걸음이 늦어지는 만큼 길어진 길은 아직도 망망하다.


그만 돌아갈까, 온 길을 돌아보는데

끝을 보고 싶다는 변태 같은 강박이 고개를 들었다.  



Cairns, AU (2016)



결국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도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닿은 길의 끝은 이게 끝인가 싶을 만큼 어정쩡했다. 오른쪽으로 끼고 걷던 바다는 사라졌지만 길은 여전히 어디론가 이어져 있었다. 도저히 아리송해서 더 가볼까, 하며 부근을 기웃거렸지만 슬슬 다리가 아파왔고 배가 고팠으며 인적이 드물어진 길은 어둡기까지 했다.


바다도 없고, 여기가 끝이야


들러붙는 미련을 떼어내려 애쓰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길이 없었더라면 속 시원히 돌아섰을 텐데.

그러고 보면 굳이 확인하고자 했던 끝은 명확히 '끝'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적이 없다. 어물쩍 끊어져있거나 은근슬쩍 바뀌어 있거나 슬그머니 이어지거나 아스라이 꼬리를 내렸지.


끝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놈인지도 몰라.


이쯤 되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라고 하면 아주 단호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어떤 하나의 점이라기보다도 기다랗고 관대한 유예기간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여기가 끝이야, 하고 돌아서는 순간에야 비로소 이 되는지도.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라도 대신 정해줄 수 없는 것.

언제까지고 나에게 달려 있는 명사.


끝은 결정하는 순간에야 존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걸어온 꼭 그만큼의 길을 되짚어 돌아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끝이면서 끝 아닌
시작이면서 시작 아닌



부터인가 길의 끝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해왔다.

그 덕에 7km쯤 되는 바라나시의 가뜨를 몇 번이나 왕복했고

쿠스코의 고불고불한 골목들을 하염없이 헤매었으며

수없는 모퉁이를 돌고 하고많은 막다른 길에 부딪혀 되돌아와야 했지.



어쩌면 그렇게 끝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미로처럼 이어진 길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을 들여다보려 애쓰면서.

끝을 찾는 법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존재하지 않는 끝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짧은 시일 내에 또 다른 끝으로 이어져있을 그 길의 끝을 향해 나는 걸어갈 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끝이라고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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