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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 Apr 16. 2018

일자리는 줄지 않았다

일자리 과잉 공급의 시대



일자리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그것도 아주 어마어마하게 말이다. 과거에는 방송, 미디어 일을 하려면 방송국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 한대로 실시간 생중계가 가능한 시대다. 1인 방송국을 차릴 수 있다.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서 지상파 방송사 라디오PD가 될 필요도 없다. 라디오 채널 수도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팟캐스트를 포함해 라디오 형식의 DJ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이 무궁무진하게 늘어났다. 그런데도 뉴스나 신문 기사는 연일 '일자리 부족'을 외친다. 대통령님과 나랏일 하시는 분들도 '일자리 창출'을 외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일자리가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도 새로 생긴 일자리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식 고용을 한 것도 아니고, 하루 8시간 근무하는 것도 아니며, 연봉이나 월급의 개념도 없다. 그냥 취미 정도로 하기에 딱 좋은 일들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딱히 한 곳에 소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곁다리로 걸치는 여러가지 직업은 '부수입'을 얻는 수단으로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무형의 가치를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콘텐츠 크리에이터(Contents Creator)'라고 부른다. 과거의 명칭으로 하자면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PD고, 글로 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작가나 글쓴이다. 오늘날 한 사람을 가리켜 PD나 작가라고 단정짓지 않는 이유는,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포맷이 영역을 넘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팟캐스트를 하는 진행자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강연도 하고, 사업도 한다. 그리고 이들이 창출하는 수익은 한곳에 소속되어 월급, 연봉을 받으며 생활하는 월급쟁이보다 훨씬 더 많다. 심지어 누구 밑에 속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 놓일 필요도 없다. 직업의 안정성, 수익성, 미래지향성 측면 모두에서 과거 직업들보다 훨씬 더 '직업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란 '일할 수 있는 자리'다. 즉, 일할 수 있는 자리는 과거 그 어떤 때보다 늘었고, 우리는 지금 일자리 과잉 공급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기성 세대도, 심지어는 젊은 세대도 일자리를 '과거 일자리'로만 한정짓기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해졌다'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거 일자리는 갈수록 청년들이 새롭게 들어갈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존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기성 세대는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과거처럼 직원을 많이 뽑지 않아도 소수의 직원으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 누군가가 나가야 청년들의 자리가 나고, 그 자리마저도 신입과 경력자들의 무한경쟁으로 이어진다. 청년들이 다른 길을 걷지 않는 한, 갈수록 좁은 길로 스스로를 몰아넣게 될 것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가는 건 쉽다. 그러나 모두에게 쉽기 때문에, 모두 그 길을 가려고 한다. 한 길목에 초과된 인원이 모이면, 그곳은 '정체, 마비 현상'을 보인다. 뒤에서 그 골목을 바라보던 몇몇은 다른 생각을 한다. '내가 꼭 저 골목으로 가야 하나? 다른 길은 없나?' 라고 말이다. 그 덕분에 누군가는 옆 골목을 찾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하도를 만들 것이며, 누군가는 옥상으로 가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내 앞에는 아무도 없다. 무섭고 두렵지만, 때로는 설렌다. 한발짝 건널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지만, 그래도 나는 멈춰있지는 않다. 그렇게 앞으로 한발짝 나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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