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12월, 예비 아빠가 되었다
난 일본 홋카이도로 일본 출장을 다녀온 길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장을 떠나기에, 와이프를 혼자 집에 두고 약 일주일 간 자리를 비우는 게 내심 걱정되던 차였다. 잘 있을까, 혹시라도 남편 없이 매일밤 지새우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일을 하러 떠났으니까.
그래도 장모님이 잠깐 와 계신다기에 한켠 마음이 놓였다. 바깥에 다니는 건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실없이 다수의 관계, 많은 만남의 횟수를 가져가는 건 딱 질색인 와이프인지라. 친구라도 만나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그 빈자리를 장모님이 채워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실 출장 길이로 따지면 2박 3일 정도는 더 있어야 할 상황이기는 했다. 회사에 굳이 속내를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나는 혼자 있을 와이프가 걱정돼 더 있으면 좋았을 그 시간을 앞당겨 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애초에 회사를 눈치보고 다니는 스타일도 아닌더러, 2박 3일을 더 있는다고 나의 고과나 업무 역량이 외부로부터 더 검증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와이프가 빨리 오라고, 집에서 우렁각시처럼 날 기다리고 있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금세 서울로 날랐다. 짐 내리기가 무섭게 택시에 몸을 싣고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속전속결, 이날따라 택배가 많았는지 엘리베이터는 좀처럼 쉽게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출장 캐리어에 가득 실은 과자, 면세점에서 산 과자들을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2층, 1층, 지하... 땡.
드디어 엘리베이터다. 그리고 집문을 열었다.
"삐삐삐삐, 드르륵" (비밀번호 누르고 문 열리는 소리)
투명한 중문 건너 와이프의 희미한 실루엣이 보인다. 고개를 빼꼼, 늘 온몸으로 달려오기보단 빼꼼 고개를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맞이한다. 감격의 포옹을 하고, 기념품 증정식을 거행했다. "자, 선물!" 별 것 아닌 것처럼 건네면서, 또 나름 당신을 생각하며 출장을 다녀왔노라 뿌듯하게 건넨다.
"난 손 씻고 올게~" 화장실로 향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손 세정제에 오른손을 갖다대고 거품을 쭉~ 짠다. 이제 세면대 수전만 위로 올리면 오랜 내 출장의 묵은 때는 말끔히 씻겨내려갈 것이다. 그런데...
아니, 그런데... 수전과 손 세정제 사이에 뭔가 놓여있다.
아빠, 반가워요.
8월에 만나요
응? ... 무슨 ... 이게 뭐지? 도대체 무슨 말이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찰나의 순간, 갑자기 목 뒤로 서늘한 기운이 올라온다.
헐... 허... "아빠...?" 설마...
난, 아주 많이 놀랐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정말 놀라면, 놀란 척이나 놀란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
그냥 모든 행동과 생각이 멈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나를 놀라게 한 그 카드 팻말을 쳐다본다.
아주 정확히 응시한다. 그리고 되새겨본다.
"8월...", "아빠...", "반가워요..."
이제서야 조금씩 단어가 눈에 보이고, 내가 막 출장에서 돌아온 손씻는 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속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긴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잔뜩 힘이 들어간 목의 고개를 돌려본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 화장실 문 옆 비스듬히 그녀가 날 바라보고 서 있다.
처음 출장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할 때처럼 빼꼼, 고개를 3분의 1쯤 내민 그녀의 모습으로.
나는 그녀의 눈을 보고 물었다.
"진짜야?", "언제부터?"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