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트 Feb 27. 2024

Ep3. 한낮에도 하품을 하는 와이프

시도때도 없이 입을 벌린다

하품이 하염없이 나오는지, 티비를 볼 때나, 카페를 가서나, 차를 타고 떠날 때나 쉴 새 없이 하품을 하는 와이프. 연애 때, 그리고 태아가 뱃속에 없을 땐 그 어떤 장거리 운전에도 눈을 "땡"그랗게 뜨던 그녀였는데, 얼마나 피곤하고 졸렸으면 웬만한 악어 저리가라 할 정도의 입벌림과 하품이 잦아진다. 그런 그녀에게 농담삼아 웃으며 던진 한마디,

왜 이렇게(왤케) 레이지(Lazy)해?



나는 웃자고 던진 말인데...

평소 같았으면 웃고 넘겼을 그 한마디가 그녀 가슴에 못박는 상처로 다가온 것인지. 곧바로 그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임산부니까 피곤해서 그런거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나도 모르게 순간 당황스러움과 함께 뒷목에서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치 연애 때, 결혼 초기에 별 거 아닌 것들로 다투며 날을 세우던 그때가 떠올라서 그랬을까. 


닭살 같은 오돌토돌한 무언가가 내 뒷덜목을 자리잡고, 마치 사냥 직전 사자가 털 갈퀴를 쫑긋 세우듯 온몸에 경계 태세가 일어나며 "이제 그만"이라는 알림을 준다. 옛날 같았으면, "장난으로 한 말인데 왜 그래"라고 했겠지만, 이젠 안다. 그 말이 그녀에게 꽂혔으니까, 내 의도가 장난이었더라도 그녀에게는 비수로 꽂혔으니까. 즉, 그만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녀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살 조금만 쪄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태아가 뱃속에 들어서고 몸무게가 증가하고 몸이 무거워진다는 것. 그것은 단순 살찜의 스트레스와는 차원이 다른 그 무언가일 것이다. 입던 옷이 안 맞고, 평상시면 살짝 뛰어서 건넜을 횡단보도도 이제는 건널 수 없다. 먹고 싶을 때 편하게 먹었을 음식을, '이게 태아에 괜찮을까?' 고민하면서 먹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으면 됐던 과거였지만, 이제는 '태아에 해로울 수 있는 모든 것은 하지 않는다'며 아프지 않도록, 아프더라도 웬만한 아픔은 약 없이 견뎌 낸다. 


그렇다. 그녀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품을 천번, 만번해도 괜찮다

이젠 하품을 하더라도 옆에서 장난치거나, 어떠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말도 일절 하지 않는다. 대신 하품을 할 때 함께 맞창구 쳐 준다. "어구구구~~ 많이 피곤하지?" 간식을 먹고 치우지 않은 접시나 컵이 있으면 대신 가서 치워주고, 이불을 채 덮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뭐 더 필요한 거 없어?"라며 이불을 슬며시 덮어준다.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예비아빠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와 최선의 방법이다.


평생할 하품을 지금 다 하는 와이프, 그녀에게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의 말을 전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