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덕 Go Duck Jul 26. 2024

뱃속의 슬픔


뱃속의 슬픔


물기 가득 뜨거운 도로에 스쿠터 한 대가 위태로이 앞서간다.

스쿠터를 타고 있는 두 사람.

파란 옷을 입고 운전하는 남자와 그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싼 여자.

빨간 헬멧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언뜻언뜻 비치는 스쿠터의 백미러엔 남자의 미소가 비친다.

그가 웃자 여자의 등도 덩달아 웃는다.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둘의 뒷모습에서 같은 미소와 같은 밝음이.

'그대들, 이 더운 여름 위태롭고 위험하게 어디를 가는가?'

질문과 함께 떠오른 옛 일.


나도 그랬던 적 있었지.

조그만 스쿠터에 올라 둘만의 미소를 지으며 위태롭게 달렸던 적이.

그보다 훨씬전엔 자전거를 달리며 둘만의 미소를 지었고,

그보다 훨씬전엔 버스를 함께 타고 미소 지었지.

버스도 타지 못할 땐 함께 걸으며 미소 지었지.

단 돈 백원하는 자판기 커피를 나눠마시며.


문득 뱃속이 슬퍼진다.

슬픔이 어디 있냐 묻는다면 온몸에 있다 답하겠다.

때로는 가슴에, 때로는 뱃속에, 때로는 머리에, 때로는 팔과 다리에.

코와 입과 눈과 심장에, 손가락과 발가락에, 온몸 구석구석에.

옛 추억과 동시에 나는 뱃속이 슬퍼졌다.

오늘의 슬픔은 뱃속에 머무른다.

빈 것 같으면서도 비어있지 않은 슬픔.

잊은 줄 알았지만 잊지 않은 추억.

있었지만 있지 않은 너와의 그 시간이 돌고 돌아 뱃속에 자리 잡는다.


친구야 사랑아 고맙고도 고맙구나.

뱃속에 가득 담을 추억을 만들어줘서.

그때 우리 서로에게 다정히 미소질 수 있어서.

너의 미소가 나의 미소가 되게 해 줘서.

그 순간을 영원히 남기게 해 줘서.

무엇보다 사랑이란 안녕을 바라는 것임을 알게 해 줘서.


친구야 사랑아, 그리고 내 자랑아.

세상 어디에서도 그 미소를 잊지 말고 지어주렴.

나도 그렇게 살아갈 테니.


부디 그대 건강하거라.


매거진의 이전글 시모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