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도 격식 없는 차례상을 차렸다.
나물 몇 가지, 전 몇 가지, 탕국, 과자, 과일. 술은 없다. 대신 식혜와 아메리카노, 믹스커피를 올렸다. 향 대신 인센스 스틱을 피웠고 초는 다이소에서 파는 향초를 사용했다. 근본 없이 나 먹고 싶은 걸로 만든 차례상이지만 그래도 차려놓고 보니 제법 그럴싸해 보여 여느 종갓집 부럽지 않았다.
지난 설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차례상이다. 오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다 문득 차례상을 올리게 된 건 나 스스로 설, 추석을 감사의 날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게 있어 명절은 감사절이다.
조상덕을 본 사람은 모두 여행을 떠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비록 명절에도 오갈 데 없는 단출한 1인이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이룬 것도 없고 풍족과도 아주 먼 거리의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다. 끼니가 되면 식사를 하고 때가 되면 잠에 들며 직장에 나가고 집에 돌아와 몸을 쉰다.
일상이 늘 행복하진 않다. 스트레스도 받고 짜증도 나며 때론 울기도 한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마음 한 편이 묵직해지고 죄인이 된 듯한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잘 지낸다. 잘 지냄이란 기쁨이 충만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잔잔함이다. 흐트러진 물을 가만두면 천천히 가라앉다 이윽고 잔잔해지듯 잘 지냄 역시 그렇다. 삶의 여러 문제가 나를 흔들어대지만 결국엔 가라앉아 잔잔하게 된다.
내세울 것 없는 삶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웃고 울고 떠들며 잘 살아왔다.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이다. 내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혼자였다면 결코 지금껏 삶을 버틸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감사드린다. 현생을 살아오며 지나친 인연들에 감사하고 존재하게 해 준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감사드린다. 제사는 덕을 보려 지내는 게 아니라 감사하려고 지내는 것이다. 절의 의미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차려놓은 음식 앞에 향을 피우고 초를 밝혀 절을 올리는 것은 지금 이렇게 존재하게 해 준 모든 조상들께 감사드린다는 인사이다. 명절이 오면 가족이 모이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확인이며 함께함에 대한 서로의 감사이다. 아무리 미운자라도 그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있어 그가 있는 것이다.
차례상에 격식은 중요치 않다. 아이스크림과 치킨을 올려도 되고 떡볶이와 튀김을 올려도 된다. 좋아한다면 짜장면을 올려도 좋으리라.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저 물 한 사발도 족하리라. 그조차 안된다면 감사의 마음 하나만 가져도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당신의 명절이 행복하길
나의 명절이 행복하길
모두의 명절이 행복하길
모두가 용서하고 감사하는 명절이 되길
그렇게 되길 가만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