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
식사를 하다 말고 문득 생각난 듯 그가 말했다.
“네?”
소문난 맛집이라 기대했지만 형편없는 음식에 실망한 나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선배는 이게 맛있어요? “
의아해하는 내 물음에 그는 싱글대는 얼굴로 음식만 먹을 뿐 대꾸가 없다.
'뭐가 좋다고 저러는지...'
나는 음식에 열중한 그를 보며 대답 듣길 포기한다. 숟가락을 놓고 주위를 보니 가게 안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중 몇몇은 음식엔 손도 대지 않고 사진만 찍어댄다. 입구 유리문 너머 기웃대는 사람도 보인다. 아직도 대기자가 많은가 보다. 도대체 왜...
"잘 먹었습니다."
어느새 반찬들까지 깨끗이 비운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개운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나를 향해선지 비워진 그릇들을 향해선지 모르겠다. 늘상 보는 모습이니 그러려니 한다.
"감사합니다. 잘 먹고 갑니다."
계산을 마친 선배가 넉살 좋은 얼굴로 인사를 했지만 대꾸가 없다. 뿔이 난다. 무성의한 음식에 서비스까지. 이건 한 마디 해야 한다. 그런데 눈치를 챈 선배가 잽싸게 내 팔을 잡아끌고 식당을 나서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다.
"바빠서 그렇겠지 바빠서."
선배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문을 나서는 등 뒤로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린다.
“다음 대기자 들어오세요. 2332번! 2332번!!”
그 소리를 들은 대기자 하나가 손에 든 종이를 맞춰보더니 일행을 이끌고 의기양양 우리를 스쳐 지난다. 아까 보았던 기웃대던 사람인 듯하다. 가게 밖엔 아직도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이상한 건지, 그들이 이상한 건지.
"커피?"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머리를 흔드는 내게 그가 빙긋 웃으며 가게 옆의 조그만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가리킨다.
"커피는 내가 쏘죠."
"오케이~ 그럼 난 제일 비싼 아아로!!"
"참 나, 그것도 유머라고. 테이크 아웃? 아님 먹고 갈래요?"
"어... 밥도 먹었는데 잠깐 앉았다 가지 뭐."
맛집 아닌 맛집 덕분애 커피점에도 사람이 많았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1잔이랑 아이스 한 잔요."
"키오스크로 주문해 주세요."
그래 키오스크. 차근히 화면들을 터치하고 결제를 하자 짧은 기계음과 함께 대기표가 출력된다.
<420번. 대기인원 6>
젠장, 오늘은 맛없는 것들을 위해 기다리는 날인가 보다.
나는 한참만에 나온 커피를 마시며 반쯤 골이 난 얼굴로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선배는 아까 그 집이 맛있었어요?"
"아니."
얼음이 동동 뜬 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켜던 그가 망설임 없이 말한다. 깨끗이 그릇을 비운 사람치곤 참으로 단호한 대답이다.
"근데요?"
"응? 근데 뭐?"
"아니, 아까 좋다면서요."
"아~ 그거! 그래 좋았지. 물론."
"아니 맛이 없는데 어떻게 좋다는 말이 나와요? 게다가 서비스는 또... 어휴!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데?"
"그래도 좋았어."
그의 능청스러운 대답엔 언제나 속이 터진다.
“선배는 그게 문제예요. 사람이 너무 좋아. 싫은 건 싫다고 하고 아닌 건 아니다고 해야지 그게 뭐예요. 매사가 그러니...”
더 심한 말이 나갈 것 같아 말꼬리를 흐리긴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는 물렁하고 흐릿하다.
“허허허 그런가? 그래 뭐 맛은 없었지. 근래 들어 먹은 것 중 손에 꼽을 정도야. 근데 그래도 좋아. 어쨌든 잘 먹었잖아?"
"내 돈 내고 맛없는 거 먹은 게 어떻게 잘 먹은 게 돼요?"
"그게 말이야. 음... 나는 식당이 좋아."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는 커피 한 모금을 입안에서 우물거리다 꼴깍 삼키곤 말을 이었다.
"먹어보기 전엔 모르거든."
"싱겁긴. 아니 그거야 당연하죠. 그거 말고 저는 지금 결과를 얘기하는 거잖아요. 결과를."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그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커피가 묻은 입을 손으로 쓱 닦은 뒤 다시 얘기한다.
"우리가 식당이나 맛집에 대해 아무리 정보를 수집하고 얘길 들어도 거기가 내 입맛에 맞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잖아? 어떤 곳이라도 말이지. 그건 오직 먹어보고 난 후에야만 알 수 있단 말이야."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어찌 되었든 대가는 지불해야지. 맛이 있든 없든 말이야. 그게 좋은 거야."
"네?"
알듯 모를 듯 애매한 대답. 그는 항상 이런 식이다. 매사가 흐릿하다.
"그게 꼭 우리 인생과 닮았단 말이야.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잖아? 좋은 선택을 위해 노력도 하고 말이야. 근데 아무리 계획을 짜고 노력을 해도 그게 옳을 거란 보장은 없어. 사실 잘못되는 경우가 더 많지. 하지만 대가는 지불해야 해. 내 선택이니깐. 말하자면 인생은 모험인거지. 그런데 모험은 신나는 거잖아. 안 그래? 식당도 같아. 맛은 중요한 게 아냐. 나는 식당을 갈 때면 항상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 그게 좋은 거지. 선택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건 결과 때문이 아냐. 신나는 모험의 과정 때문이지. 내가 말한 좋다는 의미는 그런 거야."
대답을 끝낸 그는 씨익 웃는다.
식당과 인생과 모험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연결해 얘기해 놓곤 뭐가 저리 만족스러울까. 역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아. 뭐 그건 그렇다 쳐요. 그래도 선배, 내 돈 내고 맛없는 거 먹어놓고 감사합니다는 좀 아니지 않아요? 대꾸도 없는 사람한테?"
"좀 전에 얘기했듯이 맛은 중요한 게 아냐. 맛있는 걸 먹을 때가 있으면 맛없는 걸 먹을 때도 있는 거지. 그리고 맛없는 게 있어야 맛있는 것도 있는 거고. 게다가 맛이 없을 뿐이지 못 먹는 건 아니었잖아? 먹고 나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예요. 인생처럼. 이만하면 감사할만하지."
제멋대로 말을 끝낸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말문이 막힌다. 그냥 내가 말을 말아야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솜뭉치 같은 양반에게 뭘 기대하겠나.
“다 마셨으면 가죠?”
선배의 컵이 비워진 걸 보고 나는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어? 아직 다 안 마신 거 아냐?”
나는 아직 절반쯤 남은 내 컵을 들어 보이며 대답한다.
“내 선택입니다. 대가는 지불했으니 그만 일어서시죠.”
“그래? 그렇다면야 그래야지. 허허허.”
문을 나서는 내 등 뒤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