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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Feb 15. 2018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돈을 버는 3가지 형태


간판을 달고 좌판도 깔았으면 이제 돈을 벌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창업을 했기에 어떻게든 돈을 벌면서 꾸역꾸역 회사를 영위해나가야만 한다. 오늘은 돈을 버는 형태와 그 안에 숨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이야기해보겠다. 돈을 버는 형태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 것 같다. 우선 일반인, 즉 소비자를 대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 이를 Business to Customer(혹은 Comsumer) 줄여서 B2C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이나 TV를 판매하는 삼성전자가 전형적인 B2C 모델을 가지고 있다. 또 일반 소비자가 아닌 주로 회사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가 있다. 회사의 사업관리 전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오라클이나 광고를 제작해주는 제일기획 같은 대행사가 이 분야에 해당한다. Business to Business 줄여서 B2B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회사는 보통 B2C, B2B 두 부류 중 하나에 해당하거나 두 부류 모두를 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외도 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정부기관, 관공서를 대상으로 발생하는 경우다. 이런 사업을 Business to Government B2G라고 부른다. 백신으로 유명한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이나 한글과컴퓨터처럼 정부 관련기관에 납품하는 특정 제품의 매출이 큰 회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거래는 주로 조달청이 구축한 공공물자구매 플랫폼인 나라장터를 통해 이뤄진다. 행정기관이 발주한 건설, 토목 같은 도급공사 전문 건설 시공사나 지자체가 기획한 박물관을 설계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를 만드는 용역 매출이 큰 시공테크 같은 회사도 여기에 속한다.      


대부분의 회사 비즈니스 모델은 세 가지 중 하나에 속한다.


디지털 콘텐츠 개발을 주로 하는 내 회사는 매출이 B2B와 B2G 위주로 일어난다. 그러나 창업 초기에는 홍보영상 제작이 주요 사업 영역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개인이 의뢰한 영상제작을 일부 소화하면서 B2C도 일부 경험하기는 했다. 그럼 내 경험에 비춰 세 가지를 살펴보겠다.     



매우 복잡하고 창의적인 경영활동이 만들어내는 영역 B2C


일단 B2C를 이야기해보자. B2C 형태의 사업은 소비자가 적게는 천 원 단위 많게는 수백만 원을 제품 혹은 서비스에 지출하는 구조다. 그래서 매출은 푼돈을 차곡차곡 긁어모으는 형태로 일어난다.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사업은 껌 파는 롯데나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을 가진 CJ처럼 대기업이 주력하는 사업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도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 대규모 투자를 받고 주목받은 스타트업들과 벤처기업 가운데 실적이 뛰어난 유니콘들은 대부분 B2C에 속한다. 물론 디지털 콘텐츠 분야도 B2C로 돈을 버는 회사들이 있다.  공간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개발한 회사들이 대표적이다. PC방처럼 공간을 차려놓고 다양한 VR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해놓은 VR방이나 골프장을 가상현실로 바꾸어놓은 스크린골프, 관람객들에게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유명한 그림을 디지털 이미지로 바꾸어 보여주는 디지털 명화 전시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디지털 콘텐츠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형태의 사업도 있다. 아침마다 칭얼대는 내 사랑하는 딸의 울음을 단번에 그치게 하는 마법 같은 콘텐츠인 핑크퐁이나 내가 가끔 심심할 때 들여다보는 웹툰 플랫폼도 여기에 해당한다.     


B2C의 핵심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일반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살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력적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제품(혹은 서비스)의 완성도와 가격경쟁력이다. 한 마디로 기존 제품보다 품질이 뛰어나 사용하기 편리하고 가격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완성도, 가격경쟁력이 전반적으로 경쟁업체의 제품보다 떨어지는 데도 매출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기발한 프로모션이나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판촉활동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제품의 이미지를 매우 호감 있게 혹은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제품을 쓰는 소비자 스스로가 특별해 보이는 듯한 착각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값만 비싸고 품질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는데도 구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B2C는 제품의 완성도, 가격, 홍보판촉활동이 만들어내는 매우 복잡하고 창의적인 경영전략을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안개 낀 부두처럼 흐릿한 B2B 영업     


이번엔 B2B를 이야기해보자. 아무래도 나는 B2C보다 B2B, B2G 기반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대한 경험 위주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내 주변, 디지털 콘텐츠 업종의 많은 소기업들이 B2B 위주의 사업을 전개한다. 대기업이 새로 개발한 신제품을 CES 같은 박람회에 홍보하기 위한 용도의 디지털 영상제작 외주용역, 협력회사의 VR 콘텐츠 개발 일부를 위탁받은 작업, 클라이언트의 신제품을 홍보하는 용도의 앱을 만드는 일, 상업영화 일부에 들어가는 CG 작업 등이 내가 알고 있는 회사들이 주로 담당하는 B2B 영역이었다.     


B2B를 주력하는 회사도 당연히 보유한 서비스나 제품이 매력적이어야 하겠지만 소기업의 B2B에는 강력한 변수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업이다. 일반 소비자는 수백, 수천 원, 많게는 수만 원을 지출해서 제품을 구입하지만 B2B는 특성상 수천만 원, 수억 원을 호가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제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 담당자는 유사품을 만드는 경쟁기업들을 비교대상으로 넣고 저울질할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미리 예측해서 잠재적인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자사에 대한 호감도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일이 영업이다.      


그런데 B2B의 영업은 러시아워의 도심 사거리처럼 복잡하고 안개가 낀 부두처럼 모호하다. B2C처럼 드러내 놓고 적극적으로 판촉활동을 해서 잘되는 것도 아니고 가격경쟁력이나 품질이 월등하다고 해서 일감들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내 경험 상 이 분야의 영업은 주로 인간관계라는 네트워크를 타고 이뤄지기 때문에 회사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 주변의 소기업 대표들이 밤이고 낮이고 사무실을 비우고 잠재적 거래처가 될 수 있는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가 비딩(bidding)이라고 부르는 공식절차가 있긴 하다. 업체들을 공개경쟁시켜 업체들의 가격과 제안을 들어보고 그중 가장 나은 것을 합리적인 심사절차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기업들이 진행하는 비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본인이 대기업에서 전문적인 특정 업무를 하다가 그 일을 가지고 직접 창업해보겠다고 퇴사하면 이미 대기업 내부 동료들이라는 든든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셈이다. 이 경우 다른 업체에서 제아무리 낮은 가격에 비딩을 해도 대기업의 내부 동료들이 퇴사한 이를 믿고 아웃소싱 형태로 일을 맡길 확률이 크다. 이렇게 대기업에 있다가 자신이 잘 아는 업무를 아웃소싱 형태의 창업으로 연결시킨 경우 거래선을 물고 나왔다고 표현한다.      


쓸데없이 고민하지 말고 여기로 하지

그래도 일단 비딩이 뜨면 대리가 아는 회사, 부장이 아는 회사, 기존 거래회사 등 이런저런 회사들이 달라붙어서 참여한다. 최종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경영진은 회사 자체의 실력을 파악하기에 앞서 "그 회사가 사실 납기일을 잘 못 맞춘다더라. 회사가 재무가 부실하다더라" 등등 상황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다양한 풍문들을 부하직원들을 통해 듣게 된다. 사리분별을 흐리게 하는 정보들이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눈앞에서 산란하는 순간, 이미 게임은 공정한 룰을 넘어선 것이다.      


실무담당자인 과장이 지금까지 일처리를 제대로 했는지, 아니면 과장의 윗선인 부장이 어떤 상무의 라인인지 등등 직원들에 대한 평가와 판단 같은 우리가 제어하기 힘든 복잡한 변수들도 작용한다. 그래서 실무담당자가 나와 둘도 없는 아삼육이라 하더라도 본부장이 "쓸데없이 고민하지 말고 여기로 하지" 하면 부하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본부장이 미는 업체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내 경험 상 디지털 콘텐츠 분야는 어느 정도 기술 평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상위 클래스에 있는 회사들은 보유한 인력의 수준이나 다루는 툴도 비슷하다. 그래서 회사들의 실력은 사실 개긴도긴인 경우가 많다. 결국 B2B는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등에 결정적인 차이가 없다면 클라이언트와의 네트워크 구축 정도나 협상력 등에 의해서 거래 성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인망 그물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잡으려는 쌍글이 조업선처럼  여기저기 잠재적 고객이 될 수 있는 이들과 수시로 술자리 약속을 잡으며 영업하던 대표들이 주변에 간혹 있었다. 몇 년 후 다시 그 대표들을 보았을 때 스타트업 당시 파이팅 넘치던 모습은 사리지고 술독으로 부어오른 얼굴과 두툼해진 뱃살만이 내 시선 앞으로 들어왔다.   

  


내가 요구한 건 이게 아닌데요.

무한반복 수정의 늪에서


B2B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 개발은 매우 까다롭다. 특히 좀처럼 계약이 마무리되지 않고 클라이언트 측에서 무한 수정을 거는 일이 비일비재다. 일단 수정 작업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핵심적인 이유는 클라이언트 측 의사결정 라인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B2C야 제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경험한 소비자 1명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상품 대가를 지불한다. 물건이 맘에 안 들면 다시는 그 물건을 안 사거나 요리가 맛없으면 그 음식점에 가지 않으면 된다. 또 정말 마음에 안 들면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B2B는 좀 다르다. 용역의 결과물에 대해 실무담당자-중간책임자-최종책임자(보통 회사의 대표) 순으로 올라가며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간다. 클라이언트 측 실무담당자와 용역을 받은 제작자가 의기투합해서 회사를 홍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집어넣어 영상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중간책임자가 꼬투리를 잡고 수정을 요구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실무담당자만큼 해당 일에 대해 일일이 알지 못하는 최종 책임자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물만 가지고 피상적인 판단을 하고 지시를 내리기 일쑤다.     


사실 클라이언트는 해당 용역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는 최종완성물은 한계가 있다. 우리는 스토리보드만 봐도 머릿속에서 대충 어떻게 영상이 나올지 좌악 감이 잡히지만 그들에게 아무리 기획안과 스토리보드, 관련 레퍼런스를 가져다주어도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는 그림과 최종 결과물과의 유사도는 50%를 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막상 결과물이 나오면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림과 너무 다르다면서 황당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내가 요구한 건 이게 아닌데요.”

“제 이야기를 좀 오해하신 거 같아요.”

“저희 회사 특성을 깊이 고민해보셨으면 이렇게 안 나왔을 거 같은데요.”     


라는 식의 반응이다. 기존의 합의나 설계를 완전히 뒤집고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클라이언트의 난감한 요구를 받았을 때 우리의 한숨은 깊어져만 가고 속은 타들어 간다.



당당하고 아름다운 소기업이 불가능한 이유


소기업은 소기업이나 중기업을 상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간에 일을 맡긴 회사가 도산해버리거나 콘텐츠의 품질 문제를 거론하며 잔금을 못 받는 일도 발생한다. 나도 지금까지 못 받은 미수금이 차곡차곡 쌓여서 천만 원을 넘어간 지 오래다. 이런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속사정도 모르면서, 안정적인 일감을 꼬박꼬박 내려받는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의 하청업체를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계약의 내용도 여전히 ‘을’에 불리한 내용이 많다. 계약서 작성의 주도권이 당연히 돈을 주는 쪽에 있으니 ‘을’에 입장에서는 다소 공평하지 않은 조항에도 좀처럼 이의 제기하기가 힘들다. 또 대기업에게 당한 갑질을 호소하는 을도 많지만 을이 ‘병’에게 하청을 내려보내면서 자행한 소위 을질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나도 회사 운영비나 좀 벌어보겠다고 하청에 하청을 받은 형태로 일을 했던 사례가 몇 번 있있는데 진행했던 모든 작업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불쾌한 경험이었다. 결국 경쟁상대를 압도할 정도의 강력한 기술과 서비스로 무장해서 갑이 소문을 듣고 제 발로 찾아오는 ‘갑 같은 을’이 되지 않은 이상 척박하고 매정한 B2B 비즈니스에서 당당하고 아름다운 소기업은 꿈꾸기가 쉽지 않다.     


물론 B2B라도 완제품을 가지고 거래를 진행하는 경우 상황이 좀 달라질 수 있다. 기업용 보안 프로그램, ERP 전용 프로그램처럼 이미 개발해놓고 그 해당 소프트웨어에 적합한 회사들이 반드시 써야만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갑을관계에서 발생되는 전형적인 상황들을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다. 이미 스펙과 성능이 분명한 완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기업을 상대한다면 디지털 콘텐츠 제작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마감기한까지 100%의 완성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회사보다는 아무래도 회사를 상대하는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이다.


물론 완제품이 아닌 무에서 유를 만드는 분야도 예외는 있다. 회사가 작더라도 대표가 유명한 슈퍼스타라 그 명성을 듣고 클라이언트들이 찾아온다면 관계를 뒤집을 수 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좋아하는데 사실 그가 만든 건축물은 본질적으로 불편한 건물이다. 구불구불 길을 돌아 나오는 식의 공간 구성이나 자연스럽게 들어오야 하는 빛을 여기저기 막아서 굴절시키는 연출은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좋지 않은 설계라 할 수 있다. 또 주로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단열이나 에너지의 보존이라는 측면에도 약점이 많다. 그러나 그에게 건축설계를 의뢰한 기업들은 건물 자체의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는다. 왜 거장 안도 다다오니까.     




B2G의 전형적인 특성


다음은 B2G, 즉 공공기관을 상대하는 경우다.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기관 성격이 있는 준-공기관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B2C보다는 거래 과정과 절차가 공식적이고 투명하다. 용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잠깐 소개해보겠다. 어떤 군청에서 군내에 있는 국보급 문화유산을 홍보하기 위한 가상현실 콘텐츠를 만드는 기획을 했다면 실무담당 공무원은 그 기획을 토대로 제안요청서라는 것을 만든다. 제안요청서는 용역의 범위, 내용, 형태, 예산 등을 명시한 용역발주용 공식문서다. 제안요청서는 공공성격의 용역 입찰행위를 조율하는 조달청으로 접수되어 공공입찰 플랫폼인 나라장터에 공시되어야 한다. 용역선정평가의 경우 조달청이 자체 판단을 통해 접수받은 지자체의 용역을 직접 주관하여 조달청의 자체 심사인력풀에서 무작위로 심사위원을 선정해서 심사를 진행할 수도 있고 지자체에서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물론 이쪽도 암암리에 영업력이 작용한다. 기존에 특정 업체에 콘텐츠 개발을 의뢰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거나 담당자하고 술을 많이 마셔서 서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용역의 내용과 형태를 주문하는 이른바 제안요청서라는 것을 올릴 때 특정업체가 선정되는 데 유리하게끔 내용이 구성된다. 예를 들면 실적이 3억 원 이상의 실적을 가진 업체만 입찰이 가능하게 만들어놓다든지, 회사 규모가 어느 정도 된다면 20인 이상의 4대 보험급여자가 있으면 만점을 준다든지 이런 식이다. 이렇게 진입장벽을 높여놓고 점수를 많이 획득할 수 있게끔 하면 당연히 특정업체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또 공기관이 자체적으로 심사위원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영업을 한 특정업체의 입김이 들어가 업체에 호의적인 심사위원들을 다수 포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공무원 입장에서 한번 손발을 맞춰보니 일하기 편하고 콘텐츠도 잘 만들었다고 소문도 났는데 다시 회사를 갈아치우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다시 용역 입찰공고를 내고 심사를 해서 업체를 다시 뽑아야 하는 방식이 비효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기업 간의 B2B 였다면 당연히 군소리 없이 기존 회사와 계속 연장 계약을 해서 진행했을 것이다.     



B2G를 잘하는 방법


그래도 B2G는 B2B에서 비해 비교적 공정하기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 업체들도 이쪽을 주력해서 사업을 전개하는 회사들이 꽤 있다. 일단 경쟁입찰에서 선정되려면 제안요청서에서 요구한 내용을 제안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제안서를 잘 포장하고 꾸미는 능력이 중요하다. 회사 역량보다도 더 높게 치장하고 포장해서 “우리가 일을 맡으면 아주 잘할 수 있어요”라고 심사위원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잘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유사한 제작실적들을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제안서의 내용과는 별개로 정량 점수라고 해서 회사 규모나 제작실적 같은 것들을 객관적인 수치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B2G는 스타트업이 바로 뛰어들기는 힘들고 몇 년간 포트폴리오들이 축적되고 회사 시스템이 안정화가 되면 시작하는 경우가 꽤 있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초창기 여러 번 경쟁입찰에 뛰어들었다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멋들어지게 디자인을 꾸미고 내용을 충실히 썼다고 생각했는데도 떨어진 것이다. 나중에 이유를 분석해보니 유사한 용역 실적이나 4대 보험이 가입된 직원수 같은 정량 점수가 모자란 것이 원인임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정성평가와 정량평가로 구성되는 B2G 용역 입찰의 특성을 악용하는 다른 회사들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회사의 규모만 만들어놓고 정량 점수 평가 비중이 높은 용역 입찰들에 집중적으로 제안을 넣어 수주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용역이 선정되면 일감의 대부분을 외주하청으로 돌려버린다. 이 경우 겉으로는 디지털 콘텐츠 개발사, 제작사로 포장되어 있지만 본질은 에이전시 역할만을 한 것이다.    

 

제안이 선정되었다고 치자. 공무원들은 해당분야에 당연히 비전문가일 테고 관료사회의 특성상 B2B처럼 수직적인 의사결정 라인이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수시로 용역 세부 내용이 뒤집힌다. 그래도 B2B보다 편한 부분은 있다. 일단 대한민국이 망하거나 지자체가 모라토리엄 파산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잔금은 정해진 기한에 제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작업 중간에 잔금을 떼일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는 B2B와 다른 매우 안전한 거래 형태다. 그리고 정해진 예산과 기간을 준수해야 하는 공기관 사업의 특성상 수정을 하든, 지지고 볶던 간 어쨌든 계약기간 안에 모든 일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 이게 B2B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B2B는 무한 수정이 예사고 납기일은 수시로 바뀌면서 개발 일정이 고무줄처럼 늘어지기 일쑤다. 나는 3개월짜리 계약이 해를 넘겨 1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은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B2B는 안 좋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B2B를 통해서 낑낑대며 10억 매출을 올리는 것과 B2G를 해서 3억 매출을 올리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실래요?”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다.     


일이 재미가 없다.

현재 내 회사 매출구조는 B2B에서 B2G 쪽으로 많이 넘어온 상황이다. B2G도 일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동안 B2B를 하면서 전전긍긍했던 마음고생이 조금 사라져서 예전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상태다. 그런데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일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부기관을 상대하는 일이라 대부분의 용역들이 공무원 특유의 구닥다리 도식적이다. 콘텐츠 개발 기획에는 당연히 해당 기관의 특성들이 많이 반영된다. 예를 들어 지자체라면 관광자원이나 대표 문화유산 등을 홍보하는 식이다. 콘텐츠의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들이 콘텐츠를 기획했기 때문에 무한경쟁 상태에 놓여있는 일반시장처럼 창의적인 것들을 기대하긴 어렵다.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구축한 박물관, 전시관들이 뻔하디 뻔한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게다가 아무리 창의적인 내용들을 제안해도 공무원들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수동적이다. 사업의 내용이 다소 튀어 외부인들의 구설수에 오르거나 이로 인해 사업이 실패했다고 판정이 나면 자신의 승진에 위험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평이하고 두무뭉수리한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직접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B2C와는 달리 용역 형태이기 때문에 업체가 저작권도 소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디지털 콘텐츠 개발사들이 B2G에 매달리는 이유는 B2B와 비교해 비교적 영업의 피로감이 덜하고 개발비용도 다소 이윤을 남길 수 있으며 용역의 선정과정도 비교적 투명하고 공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계속 B2G에 매달린다면 고루한 느낌을 주는 지자체의 무수한 사업들처럼 회사도 정체되고 낡아질 수밖에 없다. 일 년 내내 지자체가 내놓은 제안요청에 제안서를 쓰며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회사의 독자적인 점점 기획력도 사라지고 창의성도 쇠퇴한다. 내 주변에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B2G에만 매달려 밤낮없이 제안서 작업만 줄창하는 회사들이 몇 군데 있다. 홍보용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덕션이나 관공서, 지자체의 SI 사업을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들이다. 방문을 해보면 스타트업이나 소기업다운 활력이나 기획력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오랫동안 축적된 반복의 업무와 상황들이 매너리즘을 가져온 것이다.



먹고사니즘과 진퇴양난 속에서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짓인데 당장 그만둘 수도 없다. 이상적인 상황은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만 B2G 안에서 벌고 나머지는 회사만의 독창적인 기획으로 B2C나 B2B를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눈 앞에 빈 쌀독에 쌀을 채워야 하는 먹고사니즘에 포박당한 우리에게 말 그대로 이상은 이상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에게도 다시 한번 되묻는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가 100%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도 창업 초창기에 광고에 들어가는 CG 용역을 맡으면서 회사를 버텼다는 일화를 내 머릿속에서 환기해보면서 오늘도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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