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어느 날 우리는 갑작스러운 승선 명령을 받고 화란 국적의 거대한 여객선의 선실에 태워졌다. 어디로 무슨 목적으로 가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예감이 좋진 않다. 선실에는 좋은 침대가 놓여 있으나 옆으로 젖혀져 있고 인원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바닥에서 자야만 한다. 냉온수가 나오는 세면대에서 반이나 길러진 어미를 감고 바깥을 나가보니 싱가포르로 향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배는 서양으로 왕래하는 화란 여객선이니 서양으로 가겠지. 늘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포츠담 선언의 10번 조항이 담겨 있다. 동료들도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는 큰 바다로 나서면서 속력을 더했고 육지는 멀어졌다. 나는 조그마한 둥근 창 유리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먼 해변의 야자나무가 아른거리는데 곧 큰 야자열매가 떨어질 것만 가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려본다. 카푸카스 그녀와 작별인사도 못했다. 나와의 운명은 여기까지인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기어코 이 배를 같이 타고 고향에 가서 조부님께, 부모님께 절을 올릴 거야. 그러면 조부님은 꾸지람을 하시겠지. 집안을 더럽혔다고 하지만 나는 사과하고 시대의 변천, 개화를 말씀드려야지. 잘 설명을 드리면 조부님도 반드시 나를 용서하실 거야. 그리고 내심으로 좋아하실걸. 그리고 나면 동네 사람이나 남들은 흥미롭다며 호감을 가질 것이고 샘을 내겠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 처지로 돌아왔다. 잠시간의 헛된 망상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 와중에 곁에 있던 친구가 말을 건다.
“너 울고 있니?”
“별거 아니야.”
나는 눈물을 한 손으로 훔쳤다.
“너. 그 여자 생각하는 거지?”
“....”
“너 네 걱정이나 해.”
“그래. 그래야지...”
나는 다시 돌아앉았다.
다음날 우리는 싱가포르항 부두에 내렸다. 총을 든 영국군 병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우리들은 검은 포장을 친 트럭에 분승했다. 우리가 탄 트럭 좌우 전후로 7~8대의 무개차들이 호위를 한다. 난생처음으로 경험해본 엄중한 경호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컴컴한 트럭 속에서 누군가 외친다.
“뺏길 수 있으니 시계, 파카(만년필) 같은 걸 감추자.”
그러자 여러 사람의 손목에서 시계가 끌러진다. 몇 명이 귀중품을 감추려고 부스럭거린다. 하지만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