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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Jan 13. 2019

싱가포르 창이 전범수용소

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

번번한 언덕 위에 높다랗게 둘러있는 담, 그 모퉁이에 망루가 보이고 서치라이트가 햇빛에 반짝인다. 보아하니 형무소였다. 웅장한 성곽처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우리가 상식으로 경험한 형무소가 아닌 것 같았다. 정문의 흰 철판이 육중하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위로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엔 이중으로 된 철책 문이 소리를 내며 옆으로 열린다. 우리를 실은 트럭은 그 속으로 쑥쑥 흡수된다. 나무 방망이를 든 병사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질러대는 소리와 철망을 두드리는 소리에 우리는 쫓기고 또 쫓긴다. 정문에서부터 양편이 철망으로 되어 있는 통로를 따라 20m, 30m 간격으로 철문이 있다. 문을 열 때마다 방망이를 쥐고 낙하산 표시를 한 모자를 쓴 코 큰 얼굴들이 보인다.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쳇바퀴 속의 다람쥐와 같은 걸음으로 문을 15개나 거쳤다. 우리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모포와 수건 한 장을 빼냈다. 허리띠를 풀고 신발을 벗어 가방 속에 넣고 이름표를 붙였다. 나중에 조금 널따란 광장에 나가서 보니 우리가 있던 곳은 D블록이라는 곳이었다. 정신을 조금 차려서 살펴보니 시멘트색으로 된 이 건물은 지하에 1층, 지상으로 4층짜리 높이를 갖추고 있다. 주위의 높은 담 안으로 얕은 담이 있는데 담 위가 둥근 모양이라 밧줄 같은 것이 걸쳐질 구석은 없다. 누군가가 여기가 창이(樟宜) 형무소라 했다.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의 정문.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유적으로 보존 중이다. (https://www.straitstimes.com에서 인용)

나는 예전에 포로 수송 후 수마트라섬에서 돌아올 때 싱가포르에서 명물 하나를 본 적이 있었다. 홀로 높이 솟아 있는 16층 건물인 대동아 극장이다. 조선이나 일본에서는 높다고 해봐야 5,6층인데 그에 비하면 대단한 높이다. 그런데 이 창이의 언덕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성곽도 그것에 비견할 만한 명물 같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깨끗한 이 양회의 빌딩은 그 연륜에 걸맞지 않게 벌써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분명 세월이 흘러 누군가가 외국인의 관광코스로 개발한다면 훌륭한 유적지가 되리라. 영국은 동남아 식민지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다른 복지 시설을 건설하기에 앞서 이 거점도시에 튼튼한 방범 요새를 만들었다. 


우리는 D블록의 학생

나는 건물 안을 구석구석 들여다볼 자유도 권한도 없다. D블록에 들어온 사람은 감방과 좁다란 뜰과 식당을 오르내릴 수 있을 뿐, 끝까지 D 세계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블록에 가려면 달나라에 갈 만큼 많은 관문이 있다. 나이 어린 이 형무소에서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복역했을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일본군이 들어오자 많은 죄수들이 풀려나고 빈방이 많이 생겼다. 일본군은 영국이나 연합국의 부녀자 일반인 들을 3년 동안 이 집의 주인으로 삼았다. 전쟁이 끝나자 이 곳의 간판은 바뀌었다. 형무소는 2차 대전의 전쟁 범죄자 수용소이자 국제 전쟁 범죄자 재판소가 되었다. 


우리 조선인 학생들의 숫자는 6~700명이나 될까. 나는 여기서 우리들을 학생이라 지칭해본다. 오늘부터의 생활은 과거에 우리가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에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로 배우는 학생의 삶이기 때문이다. 맨발이 된 우리는 계단을 올라 자기의 방을 정한다. 두루 2미터 반 정도 되어 보이는 감방 가운데엔 시멘트 침대와 시멘트 베개가 붙어있다. 침대 양편에 한 사람씩은 더 누울 수 있을 공간이 있고, 머리를 바깥벽에 대면 바로 위쪽에 조그마한 창이 있어 바람이 잘 들어온다. 발 끝에서 30cm쯤 떨어진 곳에는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데 그게 바로 화장실이다. 용변을 마치면 수통 물로 씻어야 한다. 그 곁에 철판으로 된 출입문은 열 때는 열쇠로, 밖에서 열고 닫으면 자동적으로 쇠가 걸린다. 


문에는 밖에서 안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눈구멍이 붙어있다. 문을 열고 나서면 좁은 복도가 나오는데, 손잡이 파이프 너머로 철망이 깔려 있다. 철망은 길게 건물 중앙에 깔려서 맨 위 지붕에서 내려오는 광선을 통과시킨다. 복도의 끝을 가면 건물의 측면이고 광선의 입구이기도 하다. 발돋움을 해서 밖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이 건물에는 관리실이나 망루 외에 유리 한 장 쓴 곳이 없다. 1층으로 내려와 시멘트로 만든 식탁이 늘어져 있는 식당 입구를 지내면 조금 널찍한 흙바닥의 마당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 낮이면 마당에서 살고 밤이면 감방으로 간다. 감방 문이 닫히기 전에 복도의 끝으로 가서 발돋움을 하고 외계의 나무와 길 다니는 사람을 잠깐 보는 것이 유일한 자유일 것이다. 아니 자유를 본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까? 


비스킷 두 장과 115개의 옥수수 낱알

학생들은 먹는 것부터 배운다. 아침이면 미군 레이션 박스에서 나온 크기 5㎠, 두께 4㎜의 짭짤한 비스킷 두세 장과 한장이 채 못되는 1/3장이 지급된다. 점심은 건너뛴다. 저녁은 소금물에 옥수수를 삶은 게 나온다. 작은 주먹으로 한 움큼이나 될까. 옥수수 낱알을 하나하나 세어보니 115개가 된다. 


하루 이틀이 지난다. 급변한 식사에 위장이 놀랬을 것이다. 일주일, 열흘 단식요법이라는 것도 있으니 혹시 모를 변화를 기대하여 본다. 하지만 20일에 접어드니 몸에 저축되었던 지방이 모조리 빠지고 동료들은 모이면 음식 이야기만 한다.

“야. 전에 반둥에서는 먹은 스끼야끼가 너무 생각난다.”

“아니야. 그 레스토랑은 염소구이가 좋았어!”

“아 김치가 생각난다. 겨울에 돼지고기 넣어가지고 지저 놓으면 얼마나 맛있어!”

“이 새끼들 너무하네.”

“그러게 저 놈들이 고생은 했지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준 적은 없었지.”

“하루에 비스킷 두 장, 옥수수 한 주먹 그게 다 뭐냐.”


이제 한 달이 번쩍 넘어간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당장은 먹을 것이 문제였지만 우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사진을 찍어 가는 것이다. 앞으로 찍고, 옆으로 찍고 그런 식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제 두 달이 넘어간다. 그동안 화장실은 다섯 번이나 갔을까. 9일이나 10일쯤 되니 힘을 쓴 끝에 대변 한 덩이가 까맣게 나온다. 그래도 변이 안 나오면 고무줄을 항문에 넣어 비눗물을 붓는다. 그러면 속이 놀라 변소를 갈 수 있다. 


모두가 젊은이들이라 그럭저럭 이 생활을 감당한다. 그러나 신체가 큰 이는 시장기를 못 참는다. 죄다 눈은 푹 꺼지고 피골이 상접하다. 거인은 광대뼈만 툭 벌거진 소인이 된다. 우리가 학생이라는 자칭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방망이를 든 영국 병사는 그전에 포로였을 때에는 ‘조니’라 부르더니 이제는 ‘오이’하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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