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양현 Aug 09. 2024

7권 : 마음의 간헐

기억을 통해 불쑥 솟아오르는 감정들

소돔과 고모라 7권은 크게 두 가지의 내용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제목 그대로 남성의 동성애를 상징하는 소돔과 여성의 동성애를 상징하는 고모라의 세계를 탐험한다. 세계를 탐험하는 방식은 부도덕한 방식이다. 금기와 은폐의 세계인 동성애는 그 세계를 정면으로 주시할 수 없기에 화자 마르셀은 훔쳐보기를 이용해 들여다본다. 후반부는 다시 방문한 발베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재의 발베크는 죽은 할머니 대신 어머니를 대동한다. 화자 마르셀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예기치 않았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른바 마음의 간헐이다.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마르셀의 훔쳐보기가 시작된다. 사실 마르셀은 많은 이들을 훔쳐보곤 했다. 엿보고 관찰해야만 사람들의 온갖 습성과 성향을 파악하고 기술하고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훔쳐보기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의 세계에 접근한다. 콩브레에서의 어린 시절. 마르셀은 작곡가 뱅퇴유가 죽은 후 딸이 친구와 나누는 동성애도 그런 방식으로 발견했다. 마르셀이 훔쳐본 대부분의 상황들은 주로 고귀한 이들의 추악한 스노비즘을 드러내지만, 그중 일부는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의 주인공 제프리처럼 부도덕과 금기, 죄악의 순간과 마주한다. 샤를뤼스가 쥐피앵과 나누는 은밀한 동성애 역시 마르셀의 전지적 시점에 근거한 훔쳐보기로 발견되며, 관찰한 이미지는 카메라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극도의 세밀한 문장으로 현상된다.      


그날 공작 부부를 방문한 일에 대해서는 앞에서 얘기했지만, 훨씬 전부터 나는 그들의 귀가를 엿보았으며, 이렇게 엿보던 중 특히 샤를뤼스 씨에 관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고, 이러한 이 발견은 그 자체로 무척이나 중대한 것이어서 지금까지, 그에 적합한 자리와 지면이 확보될 때까지 이야기를 미루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5p     


마르셀은 훔쳐보고 수집한 증거들에 기반해 샤를뤼스를 필두로 다양한 동성애론을 펼친다. 흥미로운 것은 동성애에 대한 화자의 견해가 금기와 순응을 오고 가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점이다. 얼핏 보기에 문장으로 기술한 동성애는 금기와 악덕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샤를뤼스와 쥐피앵의 관계를 벌과 꽃으로 비유한 표현은 동성애가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보편법칙 중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쥐피앵은 이내 내가 늘 보아 온 그런 겸손하고도 선량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엉덩이를 부룩 내밀고 교태를 부리는 포즈를 취했는데, 마치 신의 섭리로 불쑥 나타는 뒝벌을 대하는 난초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20~21p     


여기서 뒝벌은 샤를뤼스, 난초꽃은 쥐피앵을 의미한다. 벌은 꽃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꽃은 향기를 풀풀 피우면서 최대한 잎을 벌려서 어여쁘고도 매력적인 자태로 벌을 맞아야 한다. 하지만 꽃은 본질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꽃은 수동적인 움직임의 한계 속에서 교태 만을 이용해 벌을 제 발로 찾아오게끔 해야 한다. 마르셀이 묘사한 동성애는 벌과 꽃과 같은 자연법칙의 작동체계로 움직인다.


그들은 또한 유대인처럼 서로를 피하고, 그들과 가장 대립적인 사람들이나 그들을 원치 않은 사람들만을 찾으면서, 그 사람들이 거절하면 용서하고 호의를 베풀면 열광한다.  

41p     


동성애자들은 이미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존재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들이 안전과 생존을 보장받으려면 그들의 대척점에 있는 권력자들과도 기꺼이 교류를 해야 한다, 정체성이 드러나면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는 타자들이라는 점에서 유대인과 동성애자는 매우 유사해 보인다. 


샤를뤼스 씨가 그토록 긴장하며 그의 모든 정신력을 기울여 전념하는 도형은,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보통보다 기하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닌, 젊은 쉬르지 후작 얼굴의 선이 제시하는 도형이었다.

166p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성애자들 중 가장 강력한 마력을 뽐내는 이는 샤를뤼스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그는 먹이를 찾아 살롱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그가 젊은 남자를 탐하는 기준은 우리가 단순히 이목구비가 수려한 미남을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성형외과 의사가 성형을 할 때 사용하는 황금비의 기준을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도 동일하게 작용시켜 미남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자 샤를뤼스의 남자에 대한 판단은 그만의 독특한 애호와 취향에 근거한다.     




후반부는 발베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화자 마르셀은 어머니와 함께 발베크를 방문한다. 발베크 방문은 예상과 달리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마르셀은 호텔에서 할머니가 찍은 사진에 대한 비밀 하나를 알게 된다. 할머니는 자신의 병환이 깊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짙은 화장과 화사한 미소로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사진에 대한 비밀을 알아버리자 마르셀이 사진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이것이 바로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한 푼크툼일 것이다. 마음을 순간 푹 찌르고 가슴을 후벼 파는 것. 푼크툼. 해맑은 미소로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 사진 속 웃는 얼굴의 할머니는 주인공을 순간적으로 찌르며 고통스럽게 한다.


나의 온 존재가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첫날밤부터 피로에 의한 심장 발작의 통증을 참으려고 애쓰면서 나는 신발을 벗기 위해 조심스럽게 천천히 몸을 구부렸다. 하지만 발목 부츠의 첫 단추에 손이 닿자마자, 뭔가 미지의 성스러운 존재로 채워진 듯 가슴이 부풀어 오르면서 오열에 흔들리더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순간 기억 속에서, 도착했던 첫날 저녁의 피로로 몸을 기울이던 할머니의 얼굴을, 그토록 다정하고 걱정과 실망이 담겼던 얼굴을 보았다.

278~279p     


호텔에 도착한 마르셀은 신발을 벗기 위해 잠시 몸을 구부렸다가, 비의지적 기억이 발현되어 역시 호텔방 안에서 할머니가 몸을 기울이는 행동을 떠올린다. 발베크에 머무는 나날 속에서 마르셀은 다양한 기회와 순간들로 할머니가 떠오른다. 떠오른 기억은 그리운 마음과 고통으로 바뀌고 결국 마음의 간헐을 일으킨다.     


내게서 게르망트의 옛 이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할머니에 대한 진짜 추억이든 간에 거기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런저런 부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혼란에 마음의 간헐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280p


마음의 간헐. 그것이 무엇인지 더 생각해 본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평온한 상태가 아니다. 어떤 동기 혹은 무의식적으로 불쑥불쑥 다른 형질의 마음으로 바뀐다. 따지고 보면 마음이 바뀌는 순간은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바뀌기 전, 우리의 머릿속에 내재된 여러 기억들은 정돈되지 않고 혼재된 상태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비의지적인 동기에 의해 기억이 떠오르면 그것은 마음을 고통스럽게도 행복하게도 한다. 그것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이야기한 마음의 간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잠들자마자, 내 눈이 외부 사물에 닫힌 보다 진실한 시간에 이르자마자...

287p


마음의 간헐은 꿈이라는 예비단계를 거치기도 한다. 실제로 마르셀 프루스트는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수면부족으로 일상이 고통스러웠다. 소설의 화자 마르셀 역시 잠이 드는 게 여긴 힘든 게 아니다. 어찌하여 간신히 잠이 들면 그것은 종종 꿈으로 연결된다. 꿈은 되레 진실을 말해주는 시간으로 바뀐다. 스완이 꾸던 꿈. 질베르트를 좋아했을 때 꾸었던 꿈이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 꾸고 있는 꿈속의 할머니 역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내적 진실을 이야기하며 그것은 깨어난 후 마르셀의 심리변화를 작동하는 마음의 간헐을 예비한다.     


크레이프 망토를 입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눈앞에서 보는 것이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임을 알아보았다.

301p


발베크에서 할머니에 대한 대상화는 궁극적으로 어머니로 치환된다. 할머니는 부재했고 그 부재한 자리를 채운 이가 어머니다.  어머니 역시 할머니와 동일한 존재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머니는 발베크에서 할머니와 동일한 행동을 할 것이다. 발베크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은, 지금의 부재한 할머니가 그러한 것처럼 훗날 어머니가 죽고 난 후 화자에게 강한 고통을 안기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본 이가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진실을 말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중겹침은 고통의 예후를 강력하게 형상화한다.  

이전 08화 반환점을 돌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