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어류학 연구를 위한 살롱수족관 관찰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그날에야 비로소 처음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전부인 채로, 다른 얼굴 모습은 동반하지 않은 채 이처럼 홀로 다가오는 순간, 목소리 비율도 변한 듯 보였으므로,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토록 부드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지 모른다.
217p
나는 “할머니, 할머니!”하고 외쳤으며 할머니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쩌면 나를 방문하러 다시 올지도 모르는, 그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인 목소리밖에 없었다. “말씀하세요!”라고 부르짖었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는 나를 더욱 혼자 내버려 두더니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218p
할머니가 여전히 나 자신이며 언제나 내 영혼 속, 늘 과거 같은 지점에서 겹쳐지는 인접한 추억의 투명함을 통해서만 할머니를 보아 왔던 나는, 이제 갑자기 우리 집 거실에서 새로운 세게, ‘시간’의 세계, “그 사람 잘 늙었네.”라고 말하는 낯선 이들이 사는 세계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난생처음으로, 하지만 짧은 순간에 거기 등잔불 아래 긴 의자에 앉은 붉고 무겁고 천박하고 병든 여자가, 내가 모르는 쪼그라든 늙은 여자가 꿈꾸듯 멍한 시선을 책 위로 이리저리 던지는 모습을 보았다.
227p
우리가 말한 적도 없는 말이 다른 별자리에서는 웃음을 야기하며, 또 우리 행동과 태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도 마치 그림에 먹지를 대고 복사하지만 실패하는, 검정 선 있는 곳에는 빈 공간이, 하얀 부분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윤곽이 나타나는 그림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우리 이미지와 닮지 않았다
191p
블로크는 부인에 대한 찬미를 몸짓으로 표현하려 했으나, 그만 팔꿈치로 꽃가지가 꽂힌 병을 엎는 바람에 물이 온통 양탄자 위로 쏟아졌다.
350p
“진정한 영향은 지적인 환경의 영향이야. 인간은 자신이 가진 사상에 따라 규정되잖아.”
191p
부인 옆에는 오만한 올림푸스 신과도 같은 게르망트 씨가 육중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모든 팔다리에 편재하는 막대한 부의 관념이 그를 대단히 가치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마치 부가 도가니에 녹아서는 인간 금괴 단 하나로 주조된 듯, 그에게 특별히 강도 높은 밀도를 부여했다.
473p
내 팔짱을 낀 채로 걸어가면서 경멸이 깃들었지만 매우 다정한 말을 하면서, 샤를뤼스 씨는 때로 강렬한 눈초리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476p
우리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어떤 심연이 우리를 그 존재로부터 갈라놓아 그 존재는 우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도 그 존재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이 존재가 바로 우리 몸이다... 육체가 무대인 병의 현상들이 할머니의 생각엔 뭔가 막연하고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면, 그 현상과 동일한 물리적 세계에 속하며, 또 육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 정신이 마침내 문의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마치 외국인이 하는 대답 앞에서 그 말을 통역해 줄 사람을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찾는 것처럼, 그 현상은 분명하고 명료했다. 이 존재들은 우리 육체와 소통하며, 육체의 분노가 심각한지 아니면 곧 진정될지 말해 줄 수 있다.
496~49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