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 자체가 열매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
추석 지난 가을이라, 숲은 색이 조금씩 변해 간다. 만산홍엽이 머지않았다.
자세히 보면, 지금도 숲에는 붉은 것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열매다.
이름 모를 관목에 매달린 열매를 보고
그냥 '못 먹는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참 삭막했다.
숲은 아직 단풍보단 열매다.
낮 동안에는 반팔도 좋은 날씨가 열매를 영글게 만든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저마다 열매를 만들어냈지만, 가을 열매는 정취가 있다.
열매가 가을에 어울리는 건지, 가을이 열매에 어울리는 건지.
볼품없는 작은 숲에서도 열매들을 만날 수 있다.
살펴보면 보석 같은 열매가 마술처럼 나타난다.
선생님과 함께 숲을 찾은 아이들이 질문을 던진다.
'이건 뭐예요?'
'그건 나무들이 만든 한해의 결실이지. 가을이 가기 전에 나무들이 경쟁하듯 만들어낸단다.'
무얼 보고 읽지 않는다면야 이런 멘트를 날리는 선생님은 없을 거다.
'그건 빨간 열매!' 라며 단순명쾌한 답을 주는 선생님은 가끔 있겠다.
명쾌하지만 너무 무미건조하나 싶을 때는 이렇게 덧붙인다.
'열매 속의 씨앗이 자라 다시 큰 어른 나무가 될 거예요.'
물론 아이들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거 먹어봐도 되는지, 왜 빨간색인지, 누가 먹는지, 언제 어른 나무가 될 건지
질문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다.
숲 속의 이름 모를 열매, 이것들은 지난 계절의 빛을 모아 가둔 결실이다.
사람들이 과수원에서 키워낸 것들만이 열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된다.
열매는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이 멀리 가보자는 바람이기도 하다.
스스로 날개를 달고 바람을 타고 가고,
물에 빠져 물길을 따라 장소를 옮기기도 하지만,
동물을 유혹해 먹힘으로써, 동물의 힘으로 멀리 이동하기도 한다.
온 힘을 모아 뚜렷한 색이나 달콤한 맛으로 익은 것도 그 때문이다.
오로지 많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열매를 만들었지만,
새와 곤충들에게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먹을거리다.
동물의 뱃속에서 숙성한 열매가 더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한다.
이런 자연의 모습에 항상 감탄한다.
사람들은 종종 나무와 사람의 살이를 비교하고,
열매는 특히 성공이나 성취를 은유하는 단골 소재다.
종종 식상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어떤 나무의 열매.
그렇게 자라서 또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나름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그다지 찬란한 보석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삶은 그 자체가 열매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
열매라는 말만 들어도 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