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andol Jun 26. 2016

golden rain tree

지난 반 년의 아쉬움과 남은 반의 희망을 모감주나무는, 다 듣고 있다.

덥다고 여름이라면 5월부터였겠지만, 그래도 여름의 입구는 7월이다. 청포도 제대로 익어가고, 초록 잎들 최고로  자라고 짙어지는 때. 모감주나무 노란 꽃이 짙어지는 지금.

수녀원 붉은 벽돌담 안쪽에 높이 자란 나무가 있다. 담 위로 고개를 내민 나무에는 점묘화처럼 노란 꽃이 무수하게 박혔다. 담을 따라 주차한 자동차에도 작고 노란 그 꽃들이 떨어져 있다. 차 나간 자리는 노란 비 뿌리다 그친 것처럼, 자동차 모양만큼 아스팔트가 까맣게 드러났다.  

작은 꽃송이를 가까이서 살피면, 꽃에 따라 노란색 안에 붉은 테두리가 보인다. 벌이 꽃에 내려앉도록 유도하는 허니 가이드가 아닐까.

비가 오듯 노란 꽃이 무수히 떨어진다고, 이 나무의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 우리말로는 모감주나무. 무환자나무목이다. 7~15개 작은 잎이 어긋나기로 달린 우상복엽이다. 작은 잎 하나씩도 모양이 남다르다. 거친 테두리와 뚜렷한 잎맥이 눈길을 끈다.

무수한 노란 꽃 지고 난 자리에는 꽈리 모양 열매가 맺힌다. 연두색으로 시작해 10월경 갈색으로 여문다. 그 속에는 여느 나무처럼 과육이 든 게 아니라 달랑 까만 씨앗 3개가 들었다. 이게 그렇게 단단하다. 옛사람들은 단단한 건 모두 금강석과 견주었는데 그래서 '금강자'라고 했단다. 둥글고 단단하고 까만 씨앗을 어디에다 썼을까? 염주다. 그것도 '금강'이란 이름에 걸맞게 큰스님 정도는 돼야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지. 피나무와 무환자나무, 이 둘과 더불어 씨앗으로 염주를 만드는 나무다.

모감주나무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익숙한 나무가 아니다. 모감주의 모감은 '묘감'이라는 스님의 이름이 변한 것이고, 주는 '구슬 주' 자다. 어찌 됐건 불교와 연관이 많은 나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흔치 않은 나무였으나 최근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의 조경수로도 자주 보인다. 언젠가부터 그런 목적으로 널리 보급한 모양이다. 이팝나무도 그랬다. 원산지는 중국이란다. 서해안으로 들어왔다는데, 속이 빈 모감주 열매가 서해바다 위를 둥둥 떠 온 것은 아닐까. 열대에서 자라는 '문주란' 씨앗도 대양을 건너 제주도까지 파도 타고 왔다고 들었다. 모감주의 꽈리를 물에 놓아보았는데, 정말 뜬다.

모감주는 느티나무처럼 크고 의젓하게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은 아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노란 꽃 아래 자리를 펴고 쉬기에 부족함이 없다. 황금빛 꽃이 떨어지는 모감주나무 가로수 아래로 더위가 비껴간다.

코 앞에 닥친 장마와 긴 더위 걱정에, 피곤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사는 이야기. 지난 반 년의 아쉬움과 남은 반의 희망을 모감주나무는 다 듣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면 노란 꽃이 황금비 되어 떨어지겠지. 말 못 할 세상사 단단한 한 알의 씨앗으로 아물 것이 틀림없고.


 

작가의 이전글 마로니에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