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andol Apr 08. 2018

온갖 제비가 날아든다.

당신도 아마 한 번쯤은 이런 느낌 든 적 있었겠지

알록제비, 졸방제비, 단풍제비, 남산제비, 콩제비, 노랑제비, 잔털제비, 둥근털제비, 왜제비, 금강제비, 호제비... 뭔 제비가 이렇게도 많은지. 강남제비가 빠졌지만, 매일매일 온갖 제비가 날아든다. 물론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그 제비는 아니다. 그 제비들이 올 때쯤 그러니까 지금쯤 지천에 피어난다고 해서 이름 붙은 제비꽃이다. 제비꽃 이름을 말하자면 또, ‘오랑캐’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도 있겠다. 유난히 침략을 많이 받은 반도국의 슬픈 이야기다. 제비꽃이 필 이맘때쯤 그렇게 침략이 잦았는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 ‘오랑캐꽃’이라 불렀다는. 


아무튼 바이올렛 특유의 감성으로 다가오는 제비꽃은 이처럼 많은 종류가 있기로도 유명하다. 해서 그 많은 종류를 비교할 수 있고,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정확히 다 본 사람도 잘 없을 거다. 50여 종이나 되니까. 유심히 잘 살펴보면 서로 구별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데, 이걸 찾는 게 취미인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꽃의 색, 잎의 모양, 줄기의 유무, 잎이나 줄기에 난 털...

잎 모양이 특별한 남산제비꽃 

나도 갑론을박자 중 1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구분은 사실 띄엄띄엄 조금밖에 모른다. 그때그때 보았던 그 배경이나 느낌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제 막 봄이 온 산길에서 보일 듯 말 듯 숨은 한 송이를 본 경우. 이때는 그냥 신기한 마음에 감탄할 뿐이다. 아직은 무채색이 더 많은 3월의 땅에서 보랏빛 꽃이 피어날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그것을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게 되었다.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면 이 한 송이가 점차 번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가끔은 군락이랄 만한 곳을 발견할 때도 있다. 어느 들꽃이라도 그렇지만, 눈부시다. 횡재라도 한 것 같지만, 이럴수록 차라리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좋다. 특히 살짝 부는 봄바람에 빛이 반대 방향에서 비출 때 볼 것을 권한다. 반투명한 보랏빛들이 반짝이며 춤추는 것을 보게 되리라. 빛이 움직이는지 꽃이 움직이는 건지 잘 몰라야지 정상적인 감수성이다.  

운이 좋으면 흰색이나 노란색 제비꽃을 볼 수도 있다. 그중 서울 남산에서 발견되었다는 흰색의 남산제비꽃은 잎 모양도 (단풍제비꽃과 함께) 매우 특별하다. 이런 특별한 꽃(요즘은 남산제비꽃도 흔하지만)을 보면 행운이 따를 듯한 주술을 불러일으킨다.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막걸리 한 잔에 제비꽃 이야기가 안주가 된다. 핸드폰으로 담아둔 사진도 마구 돌린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보았던 그 느낌을 알릴 순 없다. 꽃을 찾는 것은 그런 일이다.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려는 욕심에 자꾸 수식하면 처량한 노잼 신세를 면치 못할지니.  

때가 되면, 우리 동네 아파트 화단이나, 도심의 공원에서도 흔히 보게 된다.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 아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한 부모들이 자신 있게 설명한다. “이거 제비꽃이야! 예쁘지” 하며. 곧이어 아이가 “이거 제비꽃” 하고 말할 때, 부모는 기쁘다. 이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 그때 벌써 제비꽃의 여러 종류를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을까. 

언젠가 변두리의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머지않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사라질 그런 골목길. 내 마음처럼 처량하고 궁핍한. 그곳에서 제비꽃을 본 적이 있다. 오래돼 시멘트 벽과 낡은 보드블록을 배경으로 핀 제비꽃은 아름답지만 또 조금은 슬프기도 한 감동이었다. 뭔가 친숙한 그 느낌 속에서 나를 마주친 것 같다고나 할까. 세월 살아오며 당신도 아마 한 번쯤은 이런 느낌 든 적 있었겠지. 그런 당신께 안도현 시인의 <제비꽃 편지>를 띄울까. 

작가의 이전글 중의무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