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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Jul 28. 2018

나무는 어찌 이리 푸르고 담담할까.

누구에게도 미련 없이

무더위가 일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매우 부적응이라 밤잠을 설친다. 새벽에 기상했음에도 여름 아침이라 훤하다.  공원에는 벌써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다. '공원 산책자'들은 폭염에 순응해 새벽이 있는 삶을 산다. 정작 사람들보다 눈을 사로잡는 것은 짙푸르게 우거진 나무들이다. 좁은 길로 들어서니, 하늘을 가린 나무가 어두컴컴한 그늘을 만들었다. 좀 과장하자면 깊은 숲 속의 캐노피와 맞먹는다. 가을겨울의 모습과 비교해 생각해 보니 완전히 다른 길이 되었다. 갑자기 닥친 서늘한 기운이 반갑다. 근데 살인적인 무더위에도 나무들은 어찌 이리 푸르고 담담할까.


'나무도 더워서 땀을 흘려요' 아이들 앞에서는 이렇게 말문을 열며, 식물의 증산작용을 설명하곤 한다.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물 알맹이로 만들어 뿜어내지요.' 이때 물 알맹이들이 공기 중의 열을 빼앗아 시원 해지는 거라고. 그러니까 숲은 우리에게 에어컨 같은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인 거지 ㅎㅎ 도심의 나무가 10% 증가하면 여름철 온도가 0.5~0.7도쯤 떨어진다는 '증거 불충분(?)'의 사실에다, 대기오염을 줄이고 아파트 단지에 방음효과까지 낸다는 것까지 양념 삼아 설명하곤 했다. 내키면 비닐봉지를 이용해 직접 나무가 뿜는 물을 채취하는 재주도 보여줄 수 있다.


길바닥에 떨어진 이팝나무 열매를 밟고 걷는다. 여름 오기 전 벚꽃 지고 맺힌 버찌가 생각난다. 완전히 익을 때쯤이면 뉴튼의 사과처럼 낙하하고, 온 길바닥에 버찌의 선연한 피가 낭자했다. 신발 바닥을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이던 그것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소용없었다. 그만큼 많이 떨어져 있었으니까. 매년 반복되는 버찌의 추억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 떨어진 이팝 열매는 전혀 '피해'가 없다. 아직 여물지 않은 것들이라서(더위 때문에 떨어졌을까?). 이제 점점 점점 까맣게 익어가겠지. 반짝이는 버찌도 좋지만, 이팝 열매의 무광택 검정도 나름 멋이다. 길을 몇 바퀴나 돌면서 바닥에 떨어진 이팝 열매를 밟을 때마다, 이것이 하얀 꽃이었을 때 모습이 선했다. 파란 하늘을 수놓은 밥알 같은 꽃. 그러다 불볕더위가 왔고, 이러다 가을이 온다는 사실.


나무는 고독한 철인이요, 안분지족의 삶을 산다는 이양하의 수필 '나무', 그렇게 딱 나무만큼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구 탓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 영향받지도 않고 또 누구에게도 미련 없이. 나무는 어찌 이리 푸르고 담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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