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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Aug 06. 2016

숨겨둔 '일장춘몽', 회화나무

소박한 꽃, 정갈한 잎.  학자목, scholar tree의 명성을 가진

바닥에 떨어진 저것들은 무얼까. 종이처럼 부드러운 것들의 잔잔한 조각이 뿌려졌다.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에 매달려 있다. 나뭇잎 끝트머리마다 제법 많다. 꽃일 텐데, 꽃을 마주하는 감동은 없다.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고는 속을 들여다보기 힘들다. 루페로 본다. 수술이 보이고, 토슈즈의 앞부분 같은 큰 꽃잎과 아주 작은 배추잎 같은 꽃잎이 보인다. 크다고 해봤자 모두 2cm가 안팎이다. 크고 화려한 꽃만이 꽃이 아니란 듯 혀를 내밀고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 뜨거운 여름을 식히는 사원한 꽃이거든" 하면서. 아, 가까이 코를 들이대니 향기가 있다. 그래 꽃이다! 자잘한 꽃이나 작은 풀들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게 꽃이다' 하는 편견이 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런 편견으로 대한다.   

작지만 자세히 보면 있을 건 다 있다. 향기까지.

한 송이씩 두드러지지 않고 작고 소박하게 핀 꽃은 정갈한 이파리들과 닮았다. 아까시나무 잎처럼 질서 정연한 우상복엽. 8월, 딴에는 5cm 안팎의 작은 소엽들이 무성하게 다 자랐다고 하겠지만  빽빽이 들어차지 않는다. 하늘을 가린다든가 하는  그런 일은 시도하지 않는다. 이파리 사이로 충분히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 차라리 매력이다. 꽃이 없을 때, 얼핏 가지만을 본다면 아까시나무 또는 싸리나무 잎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물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까시처럼 가시가 없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인 수형도 다르다.

이 작은 봉우리들이 하나하나 터지면서 연노란색 꽃이 피어난다.
인테넷에서 찾은 옛그림. 선비들이 회화나무 아래 자리를 깔았다. 5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자리를 깔고 시를 읊고, 놀 만큼의 충분한 그늘이 될까?


소박하고 정갈한 스타일은 어쩌면 그의 성품이다. 깔끔하면서도 타협을 싫어하는 듯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다른 나무들보다 한참 뒤에 잎이 피는 것, 마른 듯한 몸집을 가진 것도 아마 그 이유일 거다. - scholar tree라는 영어 이름까지 갖고있다. - 학자 나무라고 여겨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 아닐까. 물론 근거 없는 추측이다.

아까시나무 잎처럼, 단정하고 깔끔한 기수우상복엽

하지만 '학자목'이라 별명에는 이런 중국 이야기가 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옛날 중국 조정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그 아래 세 명의 정승이 안아 국사를 봤다는. 중국에서 회화나무 꽃이 필 무렵 과거시험이 열렸고, 수험생이 있거나 합격하는 경우 한 그루 심었다는 스토리도 있다. 그 시절의 학자라는 말은 곧 관직이었으니,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나무이기도 하겠다. 누구나 공무원을 부러워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곳이니까. 작은 분재로 만들어  이들에게 선물용으로 팔면 어떨까. 합격보장용 회화나무 분재라!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달린다. 열매 모양이 콩과임이 잘 나타난다.

꽃이 지고 나면 콩이 열리는 것도 회화나무의 특징이다. 콩과라서 당연히 그렇겠지만, 열매를 담고 있는 꼬투리의 모양부터가 마치 콩처럼 생겼다는 말이다. 가을면 이놈들이 까맣게 익는다. 한 나무의 열매들을 다 따서 한 곳에 두면 그중에 한 놈이 울음소리를 낸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다. 많은 나무 열매가 만병통치약(?) 수준이듯, 여러 가지 약효도 있다. 갱년기 여성, 혈관 관련 질병 이런 데 약효가 있단다.


바닥에 떨어진 저 수많은 꽃들 연노란색 꽃을 바라본다. 그중에 한 송이는 아마 덜썩이며 울고 있을 수도 있겠다. 바람 한점 없는 폭염 속에서.


가을, 노랗게 물든 단풍이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말이 있다. 일종의 일장춘몽인데, 당나라 때 어떤 이가 회화나무 남쪽 아래서 자다가 꾼 꿈이다. 꿈의 배경은 괴안국이란 나라. 주인공은 그곳에서 장원급제하고 공주와 결혼해 관리로 살며 선정을 베푼다. 그러던 중 이웃나라에서 침략하고, 장군으로서 전쟁터에 나갔으나 크게 패했다. 평민으로 강등, 실의에 찬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주위를 돌아보니 꿈속의 괴안국이란 회화나무 아래 개미굴이었다! 인생은 이처럼 한바탕 꿈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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