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마, 등골나물, 맑은대쑥, 털진득찰, 향유, 미역취, 기름새...
추석 지나면 단풍이 더 짙어질 테고, 숲 속은 보란 듯이 가을이 시작될 거다.
풀과 나무는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건 신경 끄고, 정해진 대로 불타 오를 게 틀림없다.
뉴스의 일기예보에서도 어김없이 단풍지도가 등장하고, 설악산부터 한라산까지 단풍의 속도를 중계할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대면을 권장할 터이니, 몰려다니며 즐기는 <단풍놀이>는 삼가는 게 좋겠다.
올해는 동네 공원의 가지런한 단풍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의 단풍으로 만족하고
지나는 세월의 흔적 그저 멀찌감치 바라보는 수밖에.
그래서 미리 아무도 모르게 살짝 들어간 숲 속에는, 벌써 가을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공원의 배롱나무는 백일 간다는 그 붉은 꽃 아직 피우며 여름을 고집하지만,
인적이 뜸한 가을의 숲, 땅에서 가까운 낮은 곳에서 가을꽃이 계절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
여름이 저물며 슬그머니 피었다 지는 이들의 짧은 세월이 가면, 단풍이 물밀듯이 닥친다.
그래서 이 작은 꽃들에 더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대낮에도 등짝이 서늘한 9월의 숲 속,
듬성듬성 비추는 조각 빛을 보듬어 잠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가을의 꽃이다.
오늘 본 가을꽃 중 몇 가지를 골라 한번 읊어보자.
동네서도 종종 보는 이고들빼기. 노란 물감을 찍어놓은 듯.
이름도 좀 이상한 등골나물. 꽃을 자세히 보니 이름 같은 건 이상한 줄도 모르겠다.
이름만 들어도 정갈한 느낌을 주는 맑은대쑥, 연노랑의 소박한 꽃이 어울린다.
한쪽 방향으로만 가지런히 피는 보랏빛 <향유> 꽃, 하지만 그 좋은 냄새는 잎에서 나는 걸.
볼 때마다 신기한 털북숭이 '털진득찰' 노란색 꽃도 신기하고, 잎도 신기하고.
이게 꽃인가 싶은 <큰기름새>의 작은 꽃, 사초과 식물의 운명이라.
이름과 달리 꽃은 그닥 단정하지 못한 <참취> 꽃
작고 노란 꽃 하나하나가 뭘 말하려는 듯 피어난 <미역취>
오늘 처음 본 <단풍마>의 멋진 꽃, 잎만큼이나 꽃도 멋지다.
꽃은 벌써 봄에 피었지만, 초록색 따뜻한 심장을 가진 <족또리풀>
산비탈에는 가을꽃뿐 아니라 그것을 보듬는 죽은 나무며, 지난해의 낙엽이 수북했다.
달걀 한 알을 까먹으며, 걷는 숲길에서는 고단한 삶도 잠시 비껴 나 준다.
사람들은 말했다. 들꽃을 보려면 고개 숙여 겸손해져야 한다고.
맞다. 부디 낮은 곳에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