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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Aug 28. 2016

올해 가을엔 달콤한 사랑의 고백을, 계수나무 아래서

몇 가지의 전설, 그 아래서 당신의 고백을 기대하는 이유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참 뚜렷하기도 하다. 하루만에 가을을 대면하다니. 사실은 며칠 전부터 가을의 예감이랄까 아니면 무더위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희망의 표시랄까, 그런 게 있었다. 계수나무. 그 달콤함이 느껴지는 이른 아침.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이 비친 것이다. 향긋하고 달콤한 그 냄새는 어느 때나 난다지만 가을이 다가올수록 짙어진다.

하트. 수많은 나뭇잎 중에 하트 모양은 드물다.

계수나무란 말을 들으면 많은 경우 실제 나무 모습보다는 달을 떠올린다.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동요 때문이다. 달 속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와 함께 계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단 이야기. 상상의 힘은 무섭다.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상상 속에 그렇게 계수나무를 키우고 있다.

나무나 식물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 계수나무를 잘 모른다. 보지 못했거나, 보더라도 그냥 지나쳤겠지. 하지만 그 하트 모양의 예쁜 잎, 가을날 노랗게 물들어 가는 그 잎, 세로로 죽죽 갈라지는 수피를 한번 보기라도 했다면. '이게 그 달 속에 있다는 그 계수나무!' 했을 텐데 말이다.

여름을 향해 자라는 계수나무의 싱그러운 하트.

왜 하필 계수나무일까?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중국에 오강이란 사람이 있었다.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죄명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큰 잘못을 저질러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았다. 귀양이란다. 옥황상제라 그런지 귀양지도 우주적이다. 달나라. 가서 노역도 해야 한다. 도끼로 계수나무 찍어 넘기기. 문제는 아무리 찍어도 이놈의 계수나무가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 세게 내리찍자마자 새 살이 돋아난다. 영원한 도끼질이라니, 시지프스가 이 사실을 안다면 격하게 동료애를 가질 일이다.


이제 9월을 향해, 가을을 향해.

왜 토끼일까.

이번엔 이런 전설이다. 역시 옛날 중국에 '항아'라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남편이 어렵사리 구해놓은 불로초 2인분을 혼자 다 먹어버렸다. 이제 불로 장생할 일만 남았을 텐데, 그래도 남편은 무서웠던지 도망쳤다. 행선지는 바로 달나라. 그렇게 야반도주한 그녀가 바로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래 살다 나중에는 달의 여신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까지 전해져 토끼와 계수나무라는 설이다. 하지만 실제 세계 최초로 달나라에 발을 디딘 암스트롱은 성조기를 꽂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지. '토끼는 찾을 수 없다'  당근 계수나무도 없었지.

문헌 속의 계수나무는 막연히 좋고 영광스러운 나무를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중국 사신 갈귀가 조선 성종에게 "늦가을 좋은 경치에 ~~ 계수나무 향기가 자리에 가득하네"라는 시를 지어 올리기도 했단다. 이때 계수나무는 정원수인 '목서' 종류라고 한다. 중국 옛 그림 <계국산금도>에도 계수나무 그림이 있다.

계수나무는 종종 월계수와 혼동된다. 그리스 신화에는 아폴론에게 쫓긴 다프네(Daphne)가 막다른 곳에 이르자 나무로 변하는 장면이 있다. 이야기의 백미인 이 장면에서 변한 나무가 바로 '월계수'였다. 중국인들은 신화 속의 이 나무를 월계수로 번역했다. 남유럽에는 noble laurel이란 실제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역시 월계수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러다 보니 다 계수나무가 되었다.  

중국의 원래 '계수나무'는 계피나무 류라고 한다. 껍질이 바로 카푸치노에 얹어 먹는 계핏가루, cinna-mon 가루다. 이들 나무에는 모두 한자 '계'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중국의 계수나무는 특별히 따로 하나가 있다기보다 이들 '계'자가 들어가는 나무들의 총칭이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등 모두 참나무라고 말하는 것처럼.  

경기도 광릉 국립수목원의 아름드리 계수나무

내가 직접 본 가장 큰 계수나무는 경기도 광릉 국립수목원에 있는 아름드리 노목이다. 달나라와 관계없이 그냥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여느 고목에서처럼 아우라가 대단했다. 동행한 이와 둘이서 오랫동안 그저 바라만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막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어느 오래된 아파트 화단에 열 그루 정도의 큰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는 경우도 안다. 봄이면 동글동글 물방울처럼 올라오는 새순이 아름답고 이것들이 자라고 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을이 시작되면 일부 나뭇잎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길이 모두 향기롭다. 가끔 그 향기에 발걸음이 잡히기도 할 텐데,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무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여름철 그 많은 잎들이 큰 그늘을 드리우는 두어 달, 이게 뭔 나무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잠깐 더위에서 벗어났겠지. 겨울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란 또..

잎이 진 한겨울 계수나무, 가지에 눈이 쌓였다.

경기도 파주 삼릉에는 작은 개울의 둑방에다 빼곡하게 계수나무를 심어놓기도 했다. 가을이 되면 한 줄의 노란 담을 쌓는다. 또 어디에는 아직은 한참 자라고 있는 계수나무가 성글게 잎을 달고 있다. 띄엄띄엄 댓 그루를 조경용으로 심은 거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선 계수나무, 가을이면 녀석의 둥글고 성근 잎들이 단풍이 든다. 멋진 모습으로 변한다. 2층에서 아래로 봐도 좋고, 아래서 위를 쳐다봐도 좋고.

새 잎이 날 때는 아직 하트 모양이 아니다. 붉은 기운이 돈다.

벌써부터 노랗게 변한 계수나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수나무 잎은 은행나무처럼 잎이 떨어져도 원형 그대로 예쁘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도 역시 은행나무와 마찬가지다. 잎 속의 특별한 성분이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곤충들을 물리치고, 잘 상하지도 않게 한다.

처음에 말한 그 특유의 달콤한 향기는 잎 속 탄수화물의 일종인 엿당 함량이 높아진 것이다. 이것이 휘발하면서 냄새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계수나무 아래서 고백을 하면 변치 않는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그런 스토리가 완성됐다. 아, 과학을 로멘티스트의 감수성으로 풀어내는 나무의 힘이라니.  




찜통의 폭염이 바로 어제 같은데,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9월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다. 아래 동요는 '반달'이다. 천천히 한번 불러보자. 잘 몰랐던 2절에서, 노래는 결국 샛별을 가리키며 등대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네.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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