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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Sep 04. 2016

SkyBlue 가을 하늘 아래 그린 그림 물향기수목원

 사람들은 말하겠지. "올해는 이곳 단풍이 참 볼 게 없네"

대게 이때쯤의 나무들은 볼품이 없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은 점점 떨어져 생장이 더디다. 태양과 온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식물로서는 당연하다. 자연의 순리대로 주춤하는 것이지만, 사람 눈에는 볼품없어 보인다. 보석처럼 붉은 꽃, 백옥처럼 흰 꽃들이 만발했던 때와 비교하니 더 그렇다. 8월까지만 해도, 나뭇잎들의 푸른빛은 힘이 넘쳤다. 그것들이 이제는 맥이 풀리고 한풀 꺾였다. 더위가 아직 남았다지만, 계절을 속일 순 없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붙이기는 어색하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엄청 높은 아름드리 현사시나무가 나란히 있다.(우)
해충의 공격에도 열매는 그럭저럭. 옷나무, 돌배나무
두충나무, 벚나무, 붉아무, 백합나무
채진목, 대왕참나무, 뽕나무, 수양벚나무

누구도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생물과 무생물을 묻지 않고 이 단순한 시간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바로 우리가 그렇지 않나. 청춘의 시대는 화려하나 참 짧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스쳐간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땐 그걸 왜 몰랐을까. 껴안아 보듬었어야 했는데. 그건 눈감고 지나쳐야 했는데. 그렇다고 누구처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면서 눈을 부릅뜨거나 주먹을 불끈 쥐고 싶지는 않다. 후회보다는 그냥 아쉬움이라고 하자. 나무도 그렇지 않을까.     

온실 뒤로 가을 하늘이 그림을 그렸다.
아직 초록이지만 자세히 보면 가을이 번지는 중.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무는 폭염이 꺾일 징조를 봤다. 그때부터 그는 겨울날 준비에 들어갔다. 가을도 아니고 겨울이라니 너무 멀리 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뭇잎 속 엽록소가 차츰 줄어들자, 노랗고 붉은 알갱이가 드러난다. 우리에게 그토록 푸르고 상쾌한 기운을 준 것은 붉고 노란 알갱이들을 막고 선 엽록소였던 것이다. 이제 나도 한번 빛좀 보자며 짧은 전성기를 준비한다. 밖에서는 건조한 기후가 한몫하고 안으로는 영양 상태도 좋지 않다. ‘신진대사’에 장애까지 더한 중년의 사내처럼 나무들은 점점 색이 바랜다. 이런 미세한 기운이 모여, 숲은 점점 활기 없는 색이 된다. 마지막을 타오를 한 번의 기회는 남아있다. 단풍. 나무는 가을의 그것을 마지막 정리며 정해진 순서로 생각하겠지만, 사람은 재기의 기회라며 도전 의지를 불태운다.          

여름을 보내기 싫은 배롱나무와 능소화

나무에게는 후회 같은 건 없고, 주어진 길을 가는 것뿐이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게다가 가진 것마저 다 내어준다. 그늘을 주고 과일을 주다 자신의 몸까지 다 내어주는 나무의 일생은 변치 않는 동화(童話).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물리치지도 못하면서, 수많은 다른 생명에게 살 곳과 먹을 것을 내어주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면서도 모른 척 담담하게 제 갈 길을 가는 나무.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가막살나무, 노각나무, 뽕나무, 산초나무

그렇게 다 내어주는 나무라도 올해 같은 경우라면, 많이 아쉬웠겠다. 경기도 오산 물향기 수목원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9월을 맞이한 수목원의 색은 역시 한풀 꺾였다. 배롱나무 붉은 꽃과 주황색 능소화는 아직 뽐내지만, 좀 애처롭다.   


나뭇잎들이 얼마나 가을 색이 되었을까. 살펴볼 요량으로 가까이 가봤더니, 참담하다. 제대로 된 색과 형태를 가진 게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망가졌다. 다 그렇진 않을 거야, 수종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테지 하며 옮겨 다녀 봐도 그렇다. 미국선녀벌레 같은 해충이 창궐해 나뭇잎의 진을 그렇게 빨아댄다고 하더니만 이런 거구나! 변변찮은 지식으로 피의자를 정확히 거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대부분 해충 탓이 아닐까.

모과나무, 상수리나무, 비비추, 좀작살나무

 나뭇잎에 숭숭 구멍을 내고, 비틀어지고 시커멓게 한 다음 떨어뜨린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 넝마처럼 부끄럽다. 높이 자랐고, 굵은 몸집과 질서 정연하게 아름다운 수피, 튤립 모양의 아름다운 잎을 자랑하는 백합나무는, 수치스러울 테다. 침엽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그렇다. 이곳을 한두 번 다녀간 게 아니어서 더 그랬다. 지난해, 지지난 해, 봄과 가을, 겨울의 모습이 생각난다. 수목들이 모조리 핏대를 올리며 항의하기 시작한다. 이게 뭐냐고, 대체 왜 이랬냐고.

돌아와 홈페이지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수목원 나무들에게 병충해 방제를 해주세요!" 하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에 대한 수목원의 답변은 이렇다.      

가. 미국선녀벌레는 단풍나무, 산수유, 참나무, 벚나무, 가시나무 등 거의 모든 나무에 발생하는 해충으로 최근 높은 기후 탓에 농경지와 산림 내 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 해충 방제를 위해서는 살충제를 살포해야 하는데, 우리 수목원에서는 관람객의 안전 및 살충제로 인한 다른 수생곤충 피해 등 수목원 생태계 영향을 고려하여 수목원 휴원일(매주 월요일)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방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 이는 관람객의 안전은 물론 수목원 생태계의 친환경적인 관리를 통해 보다 나은 산림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임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수목원 내 해당 해충의 완벽한 제거가 어려운 실정이지만, 미국선녀벌레에 의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대충 알겠다. 수목원의 답변도 그렇고, 벌레 먹은 나뭇잎들을 대면하고 빠져나오는 길에 본 풍경도 이해된다. 구름이 그림을 그린 sky blue. 그것을 보았거든.  그 아래로 구름을 비낀 햇살이 숲의 그림자를 드리우자, 주위는 큰 그림이 되었다. 지나는 사람들마저 다 그림 속의 한 장면이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이 앞뒤 다른 풍경들을 어떻게 설명하지?’ 이제 알겠다. 큰 그림 속에서 살아온 나무는 그저 약간 아쉬워하기만 했을 테다. 하지만 사람들은 올가을 이곳에 와서 불평하겠지. "올해는 이곳 단풍이 참 볼 게 없네. 우리 동네보다 훨씬 못해"      


물향기수목원

이곳은 아마 전국에서 전철역(1호선 오산대역)과 가장 가까운 수목원이 아닐까. 홈페이지의 소개에서 밝힌 것처럼 물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계곡이나 흐르는 물보다는 군데군데 고인 물이 많다. 습지생태원, 수생식물원, 호습성 식물원... 이런 이름을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중앙에 있는 큰 연못은 참 멋있다. 계절마다, 해 질 녘에 입구(정문과 가까운 쪽) 쪽에서 숲 안쪽으로 보면 풍경이 참 좋다. 가능하면 식물원이 문을 닫기 전 1시간 정도를 추천한다. 넘어가는 햇살에 대한 정밀묘사는 생략. 직접 가 보시도록. 또 하나 추천할 만한 곳은 방문자센터. 수목원 전체에 비하면 손톱만 한 크기지만, 소박하고 작은 전시관에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수목원 안에 경기도립산림전시관이 있어 교육적으로도 좋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좋은 곳이 많다. 아래는 수목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아래 설명을 정리했다.        

방문자샌터, 곤충원, 물향가산림전시관
방문자센터 내부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2006년 5월 개원. 1,700여 종의 식물을 보유한 34㏊의 수목원 지역은 예부터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하여 수청동(水淸洞)이란 지명 유래. 19개 주제원-습지생태원, 수생식물원, 호습성식물원과 한국의소나무원, 단풍나무원, 유실수원, 중부지역자생원 등-으로 구성되었고, 물방울 온실, 산림전시관, 난대·양치식물원, 방문자센터 등이 있다. 9시에 문 열고, 봄가을(3~5월, 9~10월) 18시, 여름(6~8월)은 19시, 겨울(11~2월)은 17시. 식당, 매점, 자판기, 쓰레기통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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