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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Sep 14. 2023

29. 돋보기와 리딩 글라스

09/13/2023

처음엔 부정했다. 벌써 노안이라니…

어릴 적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보시던 엄마와 아빠가 기억난다. 그때는 두 분이 돋보기 쓰는 것에 별 다른 생각을 못했고 자연스럽게 보였는데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서글픈 마음이 드셨겠지, 싶다. 나이를 먹어가며 내 어린 날의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공감이랄까… 엄마는 이제 다초점 렌즈가 끼워진 안경을 항상 쓰고 다니신다. 일상생활이 돋보기 없이는 어려워진 것일 테고 시력 역시 전반적으로 안 좋아지신 거겠지.


이번 여름, 한국에 방문했을 때 ‘리딩 글라스’를 맞췄다. 책을 꽤나 즐기는 편인 나 역시 이제 안경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가 된 거다. 오랜만에 받은 시력검사 결과는 우울했다. 전반적인 시력도 낮아졌고 가까운 글씨는 흐릿하게 보여 안경이 필요했다. 안경점에선 다초점 렌즈를 추천했지만, 아직은 피하고 싶었다. 늙어간다는 거, 노화의 증거인 노안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다. 그래도 책은 편하게 읽어야 하니, “그냥 리딩 글라스만 맞출게요”라고 했다.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책을 보니 새 세상이다.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왠지 서글픈데 좋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다. 요즘 40대는 예전의 30대라고,.. 노화의 속도가 느려졌다고들 하지만 그건 그냥 겉보기 등급 아닐까 싶다. 경제적 풍요로움에 겉치장에 집중하고 외모에 신경 쓰는 풍토가 반영된 것 아닐까. 실질적인 신체의 노화는 여전히 그 패턴대로 진행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안경을 맞추며, 돋보기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늙어감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아무리 리딩 글라스라고 바꿔 불러도, 기실 돋보기인데 말이다.

지금도 새 안경을 쓰고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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