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뻗은 산책길, 편안한 마음. 내 속도로 걷기
좀 더 쌀쌀해진 날씨에 눈을 떴다. 2층에 내려와서 Thermostat을 보니 71도. 기온이 낮아지긴 한 모양이다. 아침 루틴 시작 전에 히터를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올 들어 처음인 거 같다.
산책>
다들 나가고 혼자가 된 시간, 로봇 청소기 돌려두고 밖으로 나섰다.
캘리포니아 햇빛은 차가운 겨울에도 여전히 따갑다. 스웻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는데도 춥진 않았다. 나를 팟캐스트의 세계로 안내한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을 들으며 천천히 걷는다. 바람도 느껴보고 길에 핀 꽃들도 들여다보고, 주변에 새로 지은 집들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내 속도로 걷는다.
산책이 운동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해야 하는 일이라는 압박감을 느끼며 빠르게 걷기보단 내 속도로 걸으며 주변을 한 번 더 느껴본다. 조금은 차가워진 공기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도, 길가에 핀 꽃들도, 개성있게 지어진 각기 다른 모양의 집들도... 천천히 느껴본다.
대학 때 남자 친구가 수원에 살았었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가끔 둘이서 시외버스를 타고 그 친구의 홈타운인 수원까지 갔다. 수원역에서 그 친구 집까지 또는 수원역에서 남문까지, 둘이 터벅터벅 잘도 걸어 다녔었다. 그 길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마음은 늙지 않는데, 늙어가는 몸이 느껴진다는 게 서글프다고... 마음도 같이 늙어버리면 좋을 텐데라고.. 그 시절 걷고 떠 걸어도 피곤하지 않았던 그 길이, 그리운 날이다.
부엌 대청소>
오늘은 부업 차례다. 싱크대를 닦고 아일랜드 상판도 닦고 냉장고, 오븐, 전자레인지도 꼼꼼히 닦고 마지막으로 후드와 가스레인지를 닦는다. 아일랜드 위에 너저분한 잡동사니들이 보기 싫어 쟁반을 꺼내 은박지를 씌운다. 쟁반 위에 가지런히 모아 정리하니 이제 좀 깔끔해 보인다. 에스프레소 머신 주변에 너저분한 것들도 작은 바구니 하나 꺼내 정리해 담아두고 밖에 나와 있던 제빵기와 튀김기도 제자리에 넣어둔다. 물건들을 제자리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깔끔해진다. 스테인 제거를 위해 세졔를 뿌려둔 가스레인지와 후드를 닦고 마무리하니, 3시간이 흘렀다. 계속 서 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온다.
청소를 하는 동안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되는 거 같다. 잡념도 없어지고 얼룩을 닦고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정리되는 복잡한 생각들도 있다. 아마도 의미 없는 생각들은 닦아내는 먼지들과 같이 휘발되어 날아가는 게 아닐까...
한 달에 한 번 하는 대청소, 구역을 나눠서 하는 데도 힘에 부친다. 물론, 하고 나면 보람도 있지만.
딸내미 댄스 수업>
오늘은 딸내미 댄스 수업 가는 날이다. 클래스 2개를 듣는 건 오늘까지다.
꼭 필요한 수업은 아니지만, K-Pop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댄스 수업을 들을 때 행복하다고 해서 계속하고 있다. 단, 비용도 고려하고 요즘 숙제도 많아지고 해야 하는 공부도 많아지는 것을 감안해 다음 달부터 클래스 1개로 줄이기로 했다. 어른이 되면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하기 싫어도 참고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더더욱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은 하도록 해주고 싶다. 사소한 거라도 본인이 행복해지는 거라면, 그리고 거기서 얻는 행복을 즐길 수 있다면 말이다.
식사일기>
산책하고 청소하고 하다 보니 배고픔도 잊었던 거 같다. 물론, 늦은 점심도 챙겨 먹고 했지만.
오전 9시 - 드립 커피 한 잔, 달달하게 설탕 한 스푼 추가.
오후 2시 30분 - 스팸 김치볶음밥 1/2 공기, 된장찌개 + 찬밥 1/2 공기 (딸내미 도시락 싸고 남은 볶음밥과 어제 먹고 남은 된장찌개 처리)
저녁 8시 - 만두라면, 깍두기 (딸내미 댄스 수업 끝나고 늦은 저녁)
은퇴 후 생활이 자리 잡아간다.
이제 정말 완전히 트랙에서 내려온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