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이유상 또는 엠…

친밀한 이방인, by 정한아

by 눈보라콘

색다른 구성, 나란히 펼쳐진 두 사람의 이야기.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못한, 소설가 ‘나’가 우연한 계기에 신문에 실린 ‘난파선’이란 자신의 첫 소설의 작가를 찾는 광고를 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난파선’이란 소설의 작가를 사칭했던 ‘이유상’이 남기고 떠난 일기를 보고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일기 내용을 바탕으로 취재를 해나가는 내용이 하나의 흐름이다. 즉, ‘나’가 취재하는 ‘이유상/이유미’의 이야기, 그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짤막하게 녹아난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다. ‘난파선’이란 소설을 쓴 시점부터 지나온 삶의 과정들과 사건들, 아픔들로 인한 스스로의 변화,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음을 더 두드린 건, 작가 '나'의 이야기.

사실 다른 사람으로 신분을 바꾸고 거짓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흔하다. 영화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이 맡았던 역할이 그랬고, 미야베 마유키의 소설 <화차>의 쇼코 역시 그런 인물이다. 거기에 범죄자들이 다른 사람을 속이고 금품을 갈취하기 위해 쓰는 흔한 사기 수법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사실 '이유상/이유미'에 대한 얘기는 나에게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평범하지 않았던 성장 과정과 다른 사람으로 가면을 쓰고 사는 삶을 선택하게 된 배경들은 흥미롭긴 했다. 그렇다 해도 '그래서 도대체 누가 이유미/이유상이지? 만나게는 되나?'라는 궁금증조차 생기지 않은 걸 보면 이런 유의 이야기는 이미 흔한 크리셰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로 마지막까지 실제 '이유상/이유미'를 만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작가 '나'의 이야기는 마음을 두드렸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겪게 되는 출산과 동시에 다가오는 현실적인 문제들, 그 표면보다도 '나'가 느끼는 심리적인 변화를 밀도 깊게 다룬 거 같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공감이 컸다. 영국 유학 중에 만난 남편, 임신 후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반을 다지게 되는 남편과 그 기간 동안 멈춰 버린 나의 커리어. 아이와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마음, 순간적으로 드는 미움, 우울감 그리고 좌절감까지. '나' 스스로를 엄마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내가 이혼을 결심할 때 느꼈던, '나는 결혼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슬픔이 다시 떠올랐다. 다시 글을 쓰고자 하지만, 한 줄도 쓸 수 없었던 '나', 그리고 스스로를 파괴하기 위해 외도로까지 이어지는 상황들. 현상이나 사건 자체보다 '나'의 심리를 깊게 묘사한 글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첫 장을 넘길 때부터 알았다.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무겁지만 마음에 와닿는 글이라는 거. 쉽게 읽히고 마음에 깊게 남는 글을 쓰는 정한아 작가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다. 조만간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고 리뷰를 쓰고 있을 나를 떠올려본다.



텍스트로 삼은 문학작품들, 그것들은 한때 내가 삶의 경전으로 삼은 것들이었다. 한 편의 소설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지난 칠 년간 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를 낳아 키워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수백 개의 허들 같았다. 하나하나에 걸려 넘어지고, 절망하고, 회복하고, 다시 또 넘어지고, 망가지고, 바로 서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이건 변명이 아니다. 어떤 여자도 아이를 낳아 키운 것을 경력 삼을 수는 없다.
다만 갑자기 넘쳐나는 시간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기한 없이 계속되는 휴일 같았다.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바라는 법이거든요. 어제와 똑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루하다는 말입니다.
그 여자는 삶이 이미 자기를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읽어버린 후, 페허가 된 길목에서.
음반의 같은 트랙을 반복해 듣는 것처럼 새로울 게 없는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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