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취향있냥' 클럽 _ 이용찬 <노자 마케팅>
2017년 12월 20일 19시 27분 독후감 제출
'언령'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말에도 주술적 힘이 있어서 말이 씨가 되고, 아브라카다브라 다 이루어져라- 그런 거 말이다. 다음에 태어날 자식은 아들이기를 바래서 갓 태어난 막내딸의 이름을 남자애처럼 짓는다거나, 긍정적인 미래를 미리 선언하는 것 말이다. 그만큼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그 중에서도 '이름'은 언령이 가장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믿거나 말거나, 사주 팔자 볼 때도 이름은 운명을 점치는 관건이 되지 않나.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저자는 '이름'은 더더욱 껍데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또한 본질과 본성에 대한 탐구를 하다보면 이름이 담지 못한 다른 측면이나 더 깊은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 중요한 '이름'이라는 것은 짧은 몇 글자만으로도 머릿속에 인식의 틀을 짜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 지어진 대로, 또는 사전에 정의된 대로 그 안에 갇힐 때가 종종 있다. 시장의 영역으로 갈 때 그 프레임(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인식의 범위')을 깨지 않으면 "2등 국적기 아시아나"의 사례처럼 똑같은 물에서 경쟁하게 되곤 한다. 시장 구조가 복잡하고 촘촘해진 요즘에야 더더욱 어디를 둘러보나 레드오션처럼 보인다. 이 때 프레임에 갇히면 같은 시장에서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프레임을 다시 짜거나 비틀었을 때 비로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례를 이미 알고 있다. 츠타야가 'DVD 대여점' 에서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으로 업을 재정의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으로 들어선 것처럼 말이다. 대여비가 가장 저렴한 곳, 가장 많은 작품을 보유한 곳, 신작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츠타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유저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물으면 이미 시장에 제공되고 있는 기능을 더 좋게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 좋은 것을 더 좋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아직 경쟁력을 높일 지점이 분명 남아있기는 하다.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는 것, 경쟁사가 더 잘하고 있는 것을 압도하는 것! 그러나 서비스의 본질과 미션을 배제한 채 경쟁에 집중하거나 VOC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 또는 이면의 니즈를 찾는 게 서비스 기획자들의 역할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업의 본질을 고민하고, 서비스 제공자가 유저의 숨겨진 니즈를 발견하여 먼저 제안하고 세일즈 포인트로 삼을 때 한 발 나아갈 걸 두 발, 세 발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책에서 주로 담고 있는 건 레드오션의 후발주자를 위한 마케팅 전략에 가깝다. '싸우지 않는다'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봐라' 를 제시하는. 매번 일정에 치여서,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또는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주하는 순간이 올 때 경계심을 깨워주기에는 적절한 메시지였다. 내년도를 준비하는 기간이었는데 시기 또한 적절하지 않은가. (아니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