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취향있냥' 클럽 _ 스카쓰케 마사노부 <물욕 없는 세계>
2017년 11월 26일 16시 50분 제출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끼던 시절이 있다. 무민 인형을 종류별로 사모으고 무민 동화책 전집을 샀다. 좋아하는 작가의 종이책을 방 한쪽에 전시했고, 꽂힌 곡이 수록된 CD는 곧바로 사들였다. 일관성 없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물질들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실체없고 공허한 이유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좋아하는 것의 범주가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죄다 알라딘 중고 서점행 급행열차를 태워 보냈다. 새롭게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차지한 것들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회사로 온 택배 박스를 누가 볼새라 몰래 뜯으며, 왜 몰래 뜯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몇 차례 하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게 대체 무엇이냐, 하는 자조가 따랐다. 물욕을 자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워너비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한 후로는 소유보다는 소비하는 행위의 성질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시작되었다. 답에 접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을 살펴보고 그것에 비추어 나를 규정해보는 것이었다. 우리집 냉장고에 든 것이 곧 나의 몸이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이 나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 텀블벅이나 메이커스, 와디즈 등에서 브랜드나 재화가 어떤 취지에서 탄생했는지 살펴본다. 스토리를 소비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인 나와 동일시한다. 소유할 물질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물욕이 없는 세계>에서 다루는 사회가 그렇듯이 이것은 나라는 개인에 한정되는 사례가 아니라, 최근 시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소비자의 소비 기준이 변하면 생산자 또한 변한다. 맞춤형 추천이라는 것은 매스마케팅보다 비용은 높을지언정 타율이 좋아서 어느 서비스에서든 고객의 인구통계학적 프로파일, 소비 패턴을 기반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제안을 한다. 간단한 테스트로 나의 취향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취미 키트를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선 츠타야, 무인양품, 일렉트로마트, 에피그램 등 라이프스타일 편집숍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원데이 클래스나 네트워킹 모임 등 시간과 공간을 소비(경험)하는 서비스 또한 심심치않게 보인다.
다만 이러한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찝찝함이 자꾸만 생각났다. 여전히 나는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이다. 숱하게 많은 중산층, 저소득층의 사람들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비의 기준이 여전히 소유와 가성비 좋은 생필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들 말이다. <물욕 없는 세계>는 마지막 2개의 장에서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변화를 요구한다. 부의 양극화와 중산층 몰락을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를 초월한 협력과 초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제언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동시에 다시 발이 땅 밑으로 푹 꺼지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소비하는 사람으로서의 주체성 이전에 결국 개인은 구조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건강상의 문제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기다. 급하고 힘겹게 읽어내느라 오독한 부분이 분명 많을 것이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인만큼, 모임 후의 나는 부디 조금 더 저자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긍정적인 생각 전개를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