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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13. 2018

출근 준비

<100일 글쓰기> 27/100


  잠이 많은 편이다. 숙면에 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긴 탓이다. 전반적인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데다 어떻게 된 바이오 리듬인지 아침잠이 유난하다. 다행히 출근 시간은 비교적 유동적으로 당기고 늦출 수 있는 편이지만 거리가 멀어서 마음 놓고 아침잠을 잘 수도 없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푹 자는 시간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출근 준비 시간을 줄이는 방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자기 전 알림장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책가방을 챙겨두는 것처럼, 시간이 어떻든 자기 전에는 다음날 출근길에 입고 나갈 옷을 챙겨둔다. 상의, 하의, 속옷, 양말, 외투까지 전부. 외투에는 대중교통 이용 시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카드도 넣어두고, 일회용 인공눈물도 몇 개 챙겨 넣는다. 가방이 필요한 날과 필요하지 않은 날을 구분하여 자잘한 짐을 외투 주머니에 좀 더 욱여넣기도 한다. 현관에 신발도 바로 신을 수 있게 가지런히 놓아두고, 다음날 날씨를 확인해서 눈이나 비가 많이 온다고 하면 우산도 꺼내둔다. 혹시 핸드폰 충전기를 챙겨야 하면 깜빡할 수도 있으니 미리 넉넉하게 충전을 해두고 빼서 가방에 넣어둔다.


  모닝콜은 첫 번째 알림과 두 번째 알림 간의 텀은 20분, 그 다음 알림마다는 10분씩 차이를 두고 설정한다. 어렴풋하게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려면 20분 정도가 걸릴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아서 말이다. 대개는 세 번째 알림에서 '으아아아, 안돼!' 하고 위기감을 느끼며 벌떡 일어난다.

  물 한 모금으로 마른 입을 축이고, 건조한 눈에도 인공눈물을 한 방울씩 넣고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을 물고 샤워물 온도를 맞춘다. 적당히 온도가 오르면 입을 헹구고 샴푸, 린스와 바디샤워젤, 클렌징폼, 비누 순으로 후다닥 몸을 씻는다. 지체하지 않는 쪽이 물줄기 밖에 적응하기 더 쉽다고 판단해서 평일 샤워는 11분 안에 끝낸다. 기초 제품을 얼굴에 문지르고 바디 로션을 바른 후에는 머리를 말린다. 뿌리를 말리는 데에는 3분 가량이 걸린다. 간단한 가면을 좀 더 입히고 전날 준비한 옷을 주워입고 후다닥 집 밖으로 나가는 데까지는 총 23-24분 가량이 걸린다.


  아침 시간의 집앞 마을버스는 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집은 두 개 정류장의 딱 중간에 있기 때문에 급할 때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음 정류장까지 우다다다 뛰어가서 겨우 타기도 한다. 버스에 올라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트는 것이다. 운이 좋아 앉아서 갈 때는 곧 까슬까슬해질 입술에 립밤을 조금 바르는 여유도 부린다.

  전철로 갈아탄 후 문 쪽에 자리를 잡고 선 다음부터는 출근해서 해야할 일을 미리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정리하거나 책을 읽는다. 최근에는 조금 멍 때리는 걸로 긴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한다. 전날 회식에서 과음을 한 날에는 이 모든 과정이 반쯤 의식 없는 상태로 흘러간다. 정신을 차려보면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 줄에 서있을 때도 있다. 바로 오늘 아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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