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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19. 2018

말하고 싶지 않아요

<100일 글쓰기> 33/100


  내향적인 성향에 집돌이 기질이 다분하다. 사람 많은 곳에선 기가 빨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집에서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약속이나 자리가 생기면 굉장히 일찍부터 미리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면서 수시로 '아, 가기 싫다. 하기 싫다.' 하고 생각한다. 막상 나가면 은근 적응도 잘 하고 굉장히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기왕 나간 김에-라는 느낌으로 밀린 볼 일도 엄청나게 처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편이다. 그래서 입 밖으로 '가기 싫다. 부담스러워.' 같은 말을 할 때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너 그래도 막상 가면 되게 재밌게 있다가 올 거잖아.' 라고 혀를 끌끌 찬다.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재미를 느끼는 것과 스트레스, 부담은 별개의 영역이라고 되받아치고 싶다.

  낯선 자리에 가거나 충분히 친밀하지 않은 관계의 사람과 있으려면 혼자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 하고 떠벌떠벌 아무말을 하거나 목소리가 커지곤 한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무도 안 나서잖아...!' 싶어 절망할 때가 딱 그러하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혼자 부담을 느끼고 열심히 떠든다. 성향에 맞지 않는 짓을 몇 시간씩 하느라 진을 쪽 빼면서 (돌아보면 대개는 즐겁긴 했지만) 항상 힘들다. 너무 많이 떠들어서 목이 갈 때도 있고, 집에 돌아가서 내 입이 떠벌린 소리들을 기억 나는대로 줍다 보면 덮고 있던 이불을 하이킥하게 되는 것도 예사다.

  마가 뜨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 아니, 공백을 마가 뜬다고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나 자리라면 좋을텐데. 매번 맞지 않는 가면에 얼굴을 욱여넣고 있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올 때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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