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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17. 2018

횡단보도의 겁쟁이

<100일 글쓰기> 31/100


  일상적으로 가장 자주 겪는 곤란한 상황은 횡단보도에 보행자 신호가 없을 때다. 보행자가 차보다 우선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운전자는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매번 고민한다. 차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얼마의 시간을 걸려 도달할 것인가, 내가 지금 발을 떼어서 차보다 먼저 갈 수 있을까, 대충 내가 먼저 발을 내디뎌도 될 것 같긴 한데 저 차가 속도를 안 줄이면 어떡하지, 갑자기 도로 중간에서 얼어붙어 다리가 안 움직이게 되면 부딪치는 걸까 하고. 누가 옆에 있으면 조금 용기가 나지만 여전히 혼자일 때는 두렵다.
  섬에 살 때 회사 통근 셔틀을 타러 가려면 4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다. 출퇴근 시간이면 통행량이 많은 길목이었는데도 그 구간에는 차량용 신호등, 보행자용 신호등 모두 없었다. 섬 사람들도 외지인들이 모는 렌트카도 저마다 힘내어 달리는 곳이었고, 하루에 최소 두 번은 내가 어떻게든 건너야 하는 곳이었다. 움찔움찔하며 갈피를 못 잡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도 속도를 줄여주는 차가 없어서 몇 분씩 애타 하다가 차가 뜸해질 때에야 겨우 건너곤 했다.
  다행히 출근 때는 셔틀 기사님이 내가 무사히 건너올 때까지 기다려주셨고, 퇴근 때는 적당히 셔틀을 빼서 내가 먼저 건너간 후에 차들이 지나가도록 흐름을 멈춰주셨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척척 팔을 내밀어 코앞까지 온 차들도 잘만 멈춰 세우던데 나는 왜 그게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차가 무섭고, 최소한의 방식으로라도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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