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64/100>
오늘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평소 부정적인 면모들도 좋게 포장해보기로 했다.
할 일이 생겼는데 좋아하는 일이면 밤새도록 한다. 체력이 달리고 곧 죽을 것 같아도 수명 미리 끌어다 쓰는 느낌으로 어떻게든 끝장을 보고 만다.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마침 잘 써질 때도 그렇고, 만 피스짜리 레고를 조립할 때도 그렇고, 공연장 셋업이나 철거를 할 때도 그랬다. 물 한 모금, 과자 한 조각 안 마시고 안 먹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하다가 거의 졸도할 뻔 한 적도 몇 번 있긴 하지만. 꽂혔다 하면 멈추지 않는다.
반대로, 할 일이 생겼는데 별로 당기지 않거나 예상하기에 생각할 거리가 많으면 최대한 뒤로 미룬다. 로딩 시간이 매우 긴 편이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간헐적으로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러다 막판에 닥쳐서 속전속결로 해버리는 편이다. 퀄리티가 100%까진 안 나와도 체감하기에 80% 정도까진 나오는 것 같다. 어쨌든 하고 만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고.
어떤 일이든 학습이 빠른 편이다. 입사 후 동료들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들은 코멘트가 러닝커브가 가파르다는 거였다. 물론 이건 몸 제대로 쓰는 일 빼고- 머리를 쓰거나 손으로 간단히 하는 일 한정이다. 루틴한 운영 업무나 한 번이라도 해본 일은 금세 적응해서 빠르게 해내는 편이다. 안 맞는 일에 초기 저항감이 있을지언정 그것만 지나면 흡수력 하나는 자신할 수 있다.
관련해서 지적 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도 좋다면 좋은 일이다. 다소 고지식하고 빡빡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포장하면 그러하다. 작년에 개인별 업무 스타일을 알아보기 위해 팀 단위로 참여한 프로그램에서도 지적 사고를 좋아하는 타입으로 결과가 나왔다.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상'을 가려내기 위한 보완 장치가 들어간 설문이었다고 하니, 성향상 '지적 사고를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절반 이상은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체력 딸리고 집중력이 떨어질 땐 말을 하다가 길을 잃기도 하지만, 대개는 앞뒤가 맞는 말을 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잘 탄다. 매일 약 3시간을 전철 철로에 깔고 다니는데도 2년 넘게 잘 버티고 있다. 심지어 가끔은 전철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게다가 매우 빠른 속도로. 내성이 잘 생기는 건지 지구력이 좋은 건지 몰라도 어쨌든 덕분에 좋아하는 동네에도 계속 살 수 있고 밥벌이 하러도 잘 다니고 있다.
쓰다보니 쓸 거리가 은근히 많은데, 싶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래. 오랜만에 기분 좋다. 외부의 자극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를 기분 좋게 만든 건 오랜만이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땐, 역시 내가 귀여운 탓인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라는 류의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상현 오빠는 루저가 된 기분이 드는 시기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난 짱이다!!!'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하루를 시작하는 걸 권했다고 한다. 좀 더 나 자신을 귀여워하고, 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좋아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