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77/100>
다니던 중학교에는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벚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아주 오래된 신관과, 훨씬 더 오래된 구관 중 구관의 외부 계단 바로 옆에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였다. 둘이 양쪽에서 팔을 벌려 안아야 할만큼 밑동이 두껍고, 키도 2층짜리 건물인 구관만큼 컸다. 가지 하나도 가녀린 데가 없어서 초봄의 훈기가 풍기기 시작할 때면 벚꽃이 소복하게 피어났다. 개화한지 일주일쯤 지나고, 살랑살랑 봄바람을 따라 연분홍색의 꽃잎이 커튼처럼 휘날리는 게 장관이었다. 그 나무 아래 서서 바람을 맞고 있으면 구관과 신관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불어든 회오리가 벚꽃잎과 함께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이 내가 봄에 관해 갖고 있는 가장 낭만적인 기억이다.
이후의 봄이라함은 중간고사 끝물에 내린 비 때문에 목련이며 벚꽃이며 죄다 볼품 없어지던 대학 시절이나, 제대 앞으로 점심 드라이브 한 번 다녀와서 오후 업무에 매진해야 하던 최근 몇 년의 기억과, '오늘은 대기 상태 좋음-이래. 너무 아쉽다.' 하면서 터덜터덜 산책 같지 않은 산책을 한 오늘 정도이지 않나. 지나치게 짧게 스쳐가는 계절이 된 봄이건만, 왜 이토록 건조해졌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