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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15. 2018

비가 오니

<100일 글쓰기 57/100>

날이 꾸무룩해지면 아침에 영 정신을 못 차린다. 어둑해서가 아니라 그 무거운 공기에 온몸이 짓눌려서 그런 것이다.

한없이 이부자리 아래 깊은 곳까지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은 꿈 속에서도 이어진다. 매번 그럴 때 꾸는 꿈은 밀도가 높고 속도도 전환도 빨랐다. 대개는 알람이 시작하자마자 깨는데도, 도통 의식이 돌아올 줄을 몰라서 아예 듣지 못할 때도 있다. 시끄러운 빗소리에 새벽에 한 번이라도 깼던 날은 더 힘들다. 괴로워하다보면 꿈의 속도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상의 시간 또한 꽤 지난 후라 지각을 겨우 면하곤 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다음날 아침에 비가 올 것 같으면 조금 예민하게 잠든다. 제 시간에 잘 일어나야해,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면서. 알람이 울리자마자 겨우 눈을 뜬 후에는 힘겹게 몸을 뒤집고 무릎을 구부린 채 엎어진다. 정수리가 바닥을 향하도록 턱을 안쪽으로 깊게 당기고 잘 잡히지 않는 호흡을 고르면서 머리까지 피가 잘 돌기를 기다린다. 유난히 어두운 아침의 거실을 불도 키는 법 없이 비척비척 가로지르고 곧장 수건을 챙겨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창을 때리는 빗소리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적당히 섞이고 습기가 무르익고 난 후에는 외출 준비를 한다. 색이 어두운, 조금 흙탕물이 튀어도 괜찮을 바지를 골라 입고, 잘 마르지 않는 머리를 말리고 그렇게 집을 나선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급하게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일 거다.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만큼 푹 자고 일어나 나른한 기분으로 외출 준비를 하고 창이 큰 카페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게 좋다. 안식 휴가를 가야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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