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몸에 대한 기록을 써봤습니다.
영화 <벌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막막함과 두려움 속에서 미약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을 보며 위로합니다. 어쩌면 2019년에 만든 ‘운동일기장’에는 손가락을 접었다가 펴는 모습, 움직이는 순간들을 기록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21년에는 ‘운동일기장’ 기록을 중심으로 ‘버디바디’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이렇게 간단한 설명이면 끝나는 것인데 ‘버디바디’를 시작하기 전에는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프로그램을 열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과연 지금 내가 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어떤 자격으로 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자격은 누가 허락하는 걸까?” 질문은 잇달아 떠올랐고 끙끙거리며 생각한 결론은 아무튼 해야 한다였죠. “내 몸을 가장 잘 살피는 건 나뿐이니까, 다들 스스로를 존중하며 버티는 몸으로 살아야 하니까.” 이건 제가 아는 것 중에 얼마 없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해보니, 혼자서 기록을 쓰는 일과 함께 쓰는 일은 달랐습니다. ‘버디바디’의 호스트라는 감투 덕분에 과긴장이 책임감으로 이어졌거든요. 덕분에 운동일기장을 매일 적는 일의 성공 일자를 갱신했어요. 차곡차곡과 꾸역꾸역 사이로 지속한 ‘버디바디’는 원래 약속했던 4주의 시간보다 오래 함께했습니다. ‘버디바디’ 이후의 모습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마지막쯤에는 자연스럽게 달라진 숫자와 숙련된 자세가 있을 줄 알았는데 몸을 위한 질문이 구체화된 것 정도였죠.
프로그램의 목표를 운동 기록이라고 잡았지만 의식의 흐름은 살 빼기로 흘러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의도적으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걷어내려고 했어요. 내 안의 검열이 건강한지 다시 생각했어요. 몸을 꼼꼼히 보려고 할수록 형태나 숫자에 대한 이야기로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몸에 대한 관찰 대신 몸이 통과하는 하루를 살피고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더라고요. 식물의 성장을 응원하는 사람처럼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고 환기를 시켜주는 일뿐. 잎사귀가 새로 열리고 지는 건 나와는 멀리 떨어진 일이고 의지가 관여할 수 있는 건 적절한 조건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어요. 내가 매일 같이 먹은 것, 움직이는 것 관계를 맺는 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기록이었습니다.
운동 일기는 ‘몸’을 중심으로 하루를 돌아보는 새로운 시선이었습니다. 일기도 일정관리도 아닌 새로운 카테고리가 어색했습니다. 문제가 없었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 계획하는 건 돈을 버는 ‘일’을 할 때나 하는 거니까요. ‘일하는 나’와 ‘일하는 몸’을 의식적으로 구분해보는 건 하루를 돌아보는 방식을 새롭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몸을 살피는 일이 사실은 오답노트가 아니었나 싶어요. 거울에 비친 모습을 채점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피곤한 몰골을 거울로 확인하는 대신 기록으로 내 몸을 살피고, ‘다그치는 목소리’와 ‘수용의 목소리’ 중 후자에 귀를 기울여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수고했다고 말해주기로 했어요. 아주 의도적으로 스스로에게 부드럽게 안부를 묻고 문장으로 남기기로 결정했어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