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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Mar 16. 2023

'자기소개'와 '감상 나누기'

전시독후감의 필수 질문들, 이렇게 준비해보세요.

전시독후감의 자기소개


전시를 보고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일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소개, 다른 하나는 자유롭게 감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매번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어요. 특히나 자기소개가 자유로운 감상을 해칠 때가 있답니다. 그래서 전시독후감의 자기소개에서는 몇 가지 사항을 염두해서 자기소개를 대신하는 질문을 드립니다.


자기소개를 대신하는 답변은 일단 나이, 직업, 관람의 사전지식과 무관한 질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전시독후감은 '익명의 오프라인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평소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서 나라는 사람의 감각, 감상을 표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전시독후감에서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으로, 짧은 명사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감각하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나이, 직업, 사전 지식을 묻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정보와 감상을 말하는 건 장려하고 있어요. 그러니 함께 하시는 분들도 타인의 신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나의 감상을 중심으로는 깊숙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다른 이의 감상을 듣고 감상을 보태거나 질문을 할 때는 상대방이 말했던 것을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가주세요.


자기소개를 대신하는 답변은 전시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명확히 해보는 사전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 전시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가장 좋은 감상, 오래가는 감상은 나에게 와닿는 것을 찾았을 때 가능합니다. 전시장의 다양한 정보와 자극 앞에서 나를 잊어져리고 스펙터클을 바라보기만 하거나 압도되기보다는 그 사이에서 무엇을 선명하게 볼 것인지 좀 더 나에게 집중합니다. 전시를 감상하는 일은 나라는 사람을 둘러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정체성과 사회적 기준들 사이에서 내적 대화를 이어가기를 촉구합니다. 혼자서 보는 관람에서도 감상을 위해서는 속 시끄러운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다운 답변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자문하고 자답하는 과정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할 말이 많아집니다. 번거롭게 내적 대화를 하고 선택들을 솎아내며 볼수록, 전시를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시독후감의 감상 나누기


저는 처음에는 나름의 절차를 만들어서 전시를 분할합니다.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나누고, 전경과 후경을 강조합니다.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상황을 추측하고 결과적으로 관람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를 분석합니다. 제가 부지런히 살펴보고 묶어서 건네어드리는 전시 안내는 그저 준비운동에 불과합니다.


예열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감상으로 푹 들어가는 건 두 번째 관람부터입니다. 이제는 각자 눈의 불을 켜고 나에게 닿는 것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때 저는 매번 두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는 이 전시를 만든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전시물은 무엇인지, 다른 하나는 나에게 와닿는, 다른 이에게 소개하고 싶은 전시물은 무엇인지 살핍니다. 좀 더 세분화된 요령을 드리면, 일단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사진을 찍어봅니다. 찍어둔 사진을 살피고 공통적인 것들을 소거하고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이 인지 살피고 추려봅니다. 단 하나의 전시물을 선택하여 이 전시에서 느낀 감상을 꿰어봅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자주 생각했던 주제가 있지요? 맘에 밟히는 주제. 분명 고르고 고르다 보면 그 주제와 닿는 전시물이 생길 겁니다. 전시물과 함께 그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바로 세 번째 전시를 살펴볼 때입니다. 평소에 뜬금없이 내 머릿속에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기 애매했던 것들 말이에요. 감상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잘 묵혀둔 본인 만의 주제를 꺼내는 것은 다른 분들의 감탄을 이끌어낼 거예요. 결론이 나지 않았던 문제라도 꺼내두면 분명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어요. 사람들과 함께하면 헤매던 그 질문의 풍경조차도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됩니다. 그러니 충분히 이야기를 풀어내 주세요. 많은 전시물이 닿기보다는 정확히 닿은 전시물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길게- 들려주세요. 여기에 다른 분들의 의견을 곁들이면 우리는 우리 앞의 전시물을 오래 기억에 남길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세 차례의 전시 관람이 끝나고 나면 제가 멋대로, 절차대로, 숭덩숭덩 잘라낸 전시에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주렁주렁 영글고 맺어갑니다. 전시라고 하면 어쩐지 높이 솟아있어 우러러보던, 올려다보는 감각을 내려두고 대신 전시를 조망하는 관점으로 살펴보고 가까이 다가가면서 개인적인 풍부함으로 새로 채워냅니다. 좋은 감상은 기획자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 내는 것입니다. 꼭 기억해 두시고 길게 오래 감상을 말하고 서로의 감상을 보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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