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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Sep 22. 2017

우리 커플의 보이콧

권력자가 강요하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미세먼지가 최악이었다가 비 오고 조금은 나아진 거 같아요.

저는 마스크를 계속하고 다녔는데도 목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자려고 눕기만 하면 기침이 자꾸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비염이 있는 사람들은 입으로 숨을 자주 쉬니까 목이 금방 나빠진다고 하더라고요.


제 애인은 건강해서 감기도 쉽게 안 걸리고, 걸려도 약 없이 금방 낫더라고요. 술을 마셔도 숙취도 없고. 건강함은 타고 난 거 같아요. 이런 애인의 피지컬 적인 거뿐만 아니라 성격 중에서도 제가 부러워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애인의 약간 원칙주의자 같은 성격이에요.


애인은 일상생활에서도 일과 관련된 것에도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격이거든요. 규칙을 정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노력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사소한 것에서도 귀찮아서 대충하는 게 아니라 손이 한 번 더 가더라도 내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 제가 보기에 너무 멋있었어요.


자신의 원칙을 남한텐 강요하지는 않으면서 스스로는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저한테 많이 부족한 부분이었고 그래서 그런 애인의 성격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저희가 함께 살면서 정한 여러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불매운동이에요.


저희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롯데마트가 있고 20분 거리에는 이마트가 있어요. 대형마트를 가야 하는 일이 있으면 가까운 롯데마트가 아니라 더 멀리 있는 이마트로 가요.


귀찮을 때나 빨리 다녀오고 싶을 때 이럴 땐 규칙을 지키기 쉽지 않잖아요. 웬만하면 가까운 롯데마트로 갈법한데 "롯데는 싫어."라고 애인이 딱 잘라 말하니 저도 딱히 롯데를 고집할 이유도 없더라고요.


이마트나 롯데나 대기업이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희는 "롯데, 삼성, 남양, 농심, 옥시는 쓰지 말자!"라고 정했기 때문에 우리 커플의 소비생활에서 웬만하면 걸러내고 지켜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어요.


'너희 기업이 그따위로 영업하면 우리는 너네 것 안 사.'라는 마인드로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아요.


마트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아이스크림, 초콜릿, 영화관, 편의점 등등 일상생활에서 곳곳에 자리잡고있는 장소나, 물건들을 전혀 구매하지 않는것도 어렵고, 단체가 아닌 개인이 하는 보이콧은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니까 기업은 계속 횡포를 부리고 승승장구하고, 불매운동하는 소비자만 불편해지는 결과를 낳는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소비자인 저희가 대기업에 행사할 힘이 있다면 바로 보이콧, 거부운동이라 생각해요.


이번 대선에서 소수자 혐오 발언도 그렇고 약자나 소수자는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권력을 갖게 되고 뒷전으로 밀려나 무시를 당하지 않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다가 전에 읽었던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라는 책을 다시 들춰보다 이런 글을 봤는데 한번 읽어볼게요.


약한 자가 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권력의 형태 중 하나는 자신에 관한 정의를 권력자가 강요하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권력에 의해 정의된 자신의 현실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근본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저항 행위이며 강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해진 현실을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거부하지 않았다면 긍정적 자아를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억압과 착취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권력.

이 권력이 여성들을 위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 줘야 한다.


현실에 반영하기에 구체적인 해답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정답을 찾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그것을 확인하기도 했고요. 퀴어들은 권력자가 강요하는 대로 우리 존재를 뒤로 미루는 것을 거부했어요.


아직은 어쩔수 없지 하며,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비판했어요. 새로운 진보 대통령을 거부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표할 때만 주어지는 국민의 권력. 그때부터 제대로 된 유권자의 역할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심상정 후보의 발언 덕분에 퀴어들은 바로 대안을 찾았고 더욱더 확실한 거부를 할 수 있었어요.


문빠들은 현 권력인, 권력 예정자인 문을 거부한 퀴어들을 거칠게 물어뜯었어요.

지금까지 그들에게 소수자는 없는 존재였고 당연히 그들의 힘 또한 느끼지 못했는데 갑자기 퀴어들이 자신들의 후보를 거부를 하고 다른 대안을 찾으니 그때서야 성소수자들의 작지만 큰 권력을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여세를 몰아 심상정이 득표율 10%를 넘겼으면 좀 더 거부의 권력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아쉬워요.


우리는 언제나 저항할 것이고 더 나은 대안이 있으면 아주 쉽게 지지를 옮길 것이다. 이것이 약자가 가진 가장 큰 권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기업이 소비자의 눈치를 보고, 정치인이 국민의 눈치를 보는, 그리고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조그마한 거부의 권력이라도 주머니에 가만히 넣어놓고 있는 게 아니라 좀 휘둘러가며 살아야겠어요. 그거 때문에 제 삶이 조금 불편하고 귀찮아지더라도.


다른 사람들이랑 생각을 나누지 못해보고 혼자서 몇 개 주워듣고 책 좀 읽으면서 알게 된 것, 생각하는 것들은 어찌보면 위험할 수도 있는것 같아요.


제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틀렸는지 스스로 깨닫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아는 것 말고, 내 생각 말고 내가 경험했던 거 그걸로 인해 느낀 점들을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참 쉽지가 않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식사 잘 챙겨 드시고. 일교차가 큰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잠도 푹 주무세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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