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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Mar 27. 2018

불 꺼진 히라우 웰컴센터|니세코

홋카이도 한 달 살기

“짝꿍, 피곤해서 그래?”

“어? 아니…… 6시가 넘어가니깐 좀 걱정이 되네.” 


마주 보는 가족석에서 아이들은 각자 아빠 엄마의 다리를 베개 삼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잠이 들었다. 멍하니 아이들을 응시하는 아내의 눈이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걱정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오타루에서 니세코로 향하는 JR기차


홋카이도 첫 여행지인 오타루에서 너무 생각 없이 놀았나 보다. 원래 타려 했던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다.


“이제 곧 도착할 거야. 조금 늦는다고 메일 보냈다면서…….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곧 내려야 하는데 애들이 한밤중이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는 기차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일본어는 당연하고 일본식 영어도 통 못 알아듣기 때문에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까 봐 방송에 집중했다. 잠시 후 목적지인 ‘굿찬(Kutchan, 倶知)’에 잠시 정차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잠이 덜 깬 아이들과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여름과 겨울 성수기에는 굿찬 역과 니세코 스키장 주변으로 셔틀버스를 임시로 운행한다. 거리상으로는 니세코 역이 더 가깝지만 마땅한 교통편이 없는 시골 역이라 조금 더 큰 굿찬 역에서 내려 셔틀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이 좋다.


임시 셔틀버스 표지판을 확인하고 기다린 지 5분도 안 되어서 미니버스가 왔다. 

“어디 가세요?” 

물론 일본말이다. 우리가 아는 일본 인사말도 아니고 버스 타는 사람에게 물어볼 말은 이 말밖에 없지 않겠나.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물어본 것을 볼 때 영어를 못 하겠거니 생각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영어로 대답했다.


웰컴센터에서 바라본 요테이산 - 미니 후지산으로 불린다.


“니세코에 있는 ‘그랜드 히라우(Grand Hirafu) 웰컴센터’로 갑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못 알아듣는다. 여러 군데 도는 버스가 아닌 딱 정해진 경로만 가는 미니 셔틀버스인데 우리가 아무리 일본식 영어를 못한다 해도, 운전사가 아무리 영어를 못한다 해도 ‘히라우’ 정도는 알아들어야 하지 않나? 히라우는 니세코 안누푸리산의 주요 슬로프 네 곳 중 하나로 우리가 머물 숙소가 있는 마을이었다. 


“히.라.우.웰.컴.센.터 간다고요…….”

전혀 못 알아듣는 표정이라 슬슬 걱정되었다. 우리가 정보를 잘못 알고 왔나? 내려서 택시라도 타야 하나 고민하는데 다른 일본인이 차에 올랐다. 운전사와 잘 아는지 둘이서 지도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지도를 내밀었다.


“짝꿍, 이거 우리 보고 어디를 가는지 찍으라는 것 같은데?”

“여기…… H.i.r.a.f.u…… 요기 있네.”

“히라우 웨커므 세느터 데스네. 아노. 아노…… XXX XXXXXX XXX XXX.”

아놔. 우리가 말한 ‘히라우’와 저들이 말하는 ‘히라우’가 당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긴 간다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이후 말하는 일본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뭔가 거기를 지금 왜 가냐는 듯한, 그곳에 가려는 것이 맞느냐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만 들었다.  


“오케이, 히어…… 히.라.우.웰.컴.센.터.” 

일본 사람이 한 명 더 타고 버스가 출발했다. 불안한 마음에 스마트폰 오프라인 지도 앱을 켜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지 주시했다. 잠시 후 굿찬 도심을 벗어난다 싶더니 ‘웰컴 투 니세코’ 영문 표지판이 보이고 통나무 산장들이 줄지어 있는 니세코로 접어들었다. 20분쯤 달려 히라우 웰컴센터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저녁 7시를 지나 해는 그사이를 못 참고 꼴까닥 넘어갔다. 낯설고 어슴푸레한 길을 따라 저 멀리 ‘히라우 웰컴센터’가 보였다. 불 꺼진 웰컴센터가. 


텅빈 히라우 웰컴센터


“짝꿍, 우와~~ 저기 요테이산 보인다. 와! 드디어 왔어. 윤정아, 저게 요테이산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웰컴센터로 달려갔다. 외부 등이 꺼진 센터는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지만, 사람도 없고 내부의 불도 모두 꺼져있었다. 


“분명 여기서 체크인을 한다고 했는데…….” 

숙소를 예약했던 아내의 얼굴이 굳어졌다. 급하게 홀리데이 니세코(Holidaynideko.com)에 접속해서 확인해 보려 해도 무료 와이파이 하나 잡히지 않았다. 


“분명 홈페이지에서 히라우 웰컴센터에서 체크인한다고 했거든. 그리고 저녁에 좀 늦게 체크인하겠다고 메일도 주고받았어.”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행히 주변에는 숙박시설이 많이 보였다. 정 안되면 하루 다른 곳에서 자고 내일 연락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은 했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맞이한 밤은 불안했다. 벽면 보드판에 보이는 홀리데이 니세코 사무실로 전화를 해도 국제전화 로밍이라 그런지 반응이 없었다. 수십 번도 더 전화한 것 같다. 인터넷이 안 되는 스마트폰은 벽면을 밝히는 플래시 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가족을 데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어두워지는 실내에서 더 있을 수가 없어 나오려는 찰나.


오후 6시 이후에 도착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해버렸다.


“도와드릴까요?”

헉, 어둠 속 의자에서 일본인 여자 한 명이 ‘쓰윽~’ 일어나며 영어로 물어봤다. 아니 우리가 20분은 족히 여기에 있었는데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왜 몰랐지? 사람 맞아? 왜 불 꺼진 건물 의자에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반가웠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고는 우리가 아까부터 계속 전화를 걸었던 야간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잠시 벨이 울리는가 싶더니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와! 우리 전화는 수십 번을 해도 안 받더니 이 사람의 전화는 바로 받네. 


“직원이 금방 여기로 온다고 합니다.”

순간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쉽게 나오려 해서 아내 몰래 딴청을 피우곤 했다. 보통은 짠해서 나오는 눈물인데 이번에는 무척이나 기뻐서였다. 돌아서 나가는 ‘천사 귀신’을 붙잡고 오타루에서 사 온 ‘르타오 치즈케이크’를 건넸다. 극구 사양하더니 내 감동의 눈물(?)을 봐서 그런지 고맙다면서 받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뒤늦게 우리를 데리러 온 직원은 우리랑 계속 메일을 주고받던 ‘유코’였다. 

“왜 여기 계셨어요? 여기는 겨울에만 운영하는 체크인 센터인데. 안 그래도 늦게 온다 해서 집에도 못 가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알고 보니 홀리데이 니세코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보가 겨울 기준으로 되어 있었고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겨울 시즌이 아닐 때는 아래쪽 사무실에서 체크인을 받는다고 한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거듭 미안하다고 하는 유코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스키 천국이라 불리는 니세코. 비시즌 동안 숙소가 여유로운 편이다.


이렇게 기쁠 수가. 더 늦지 않게 숙소를 찾아온 기쁨에 우리 네 식구는 얼싸안고 소리를 지르며 숙소 안을 뛰어다녔다. 지어진 지 1년도 안 된 곳이라더니 모든 가구와 집기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윤정아, 우리 여기서 한 달 동안 살아볼 거야!”




<Traver Tip>

니세코 숙소 알아보기

글로벌 숙소 공유 사이트인 에어비앤비에서부터 호텔 예약 앱까지 숙소를 알아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최근 일본 에어비앤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공유경제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개별 관리가 어려운 공유 숙소에 여자 세 명을 데리고 가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니세코는 겨울 스키 시즌을 피해 여러 숙소를 임대 대행하는 업체들이 몇몇 있어 직접 견적을 받았다. 그중에 홀리데이 니세코라는 곳이 영어 사이트를 지원해서 어렵지 않게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기간이 길다면 요리가 되는 곳이 좋겠다. 생각보다 마트 물가가 높지 않아 여행경비가 절약된다. 특히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다. 일본 원전사고로 여행을 꺼린다 해도 홋카이도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오히려 본토에서도 홋카이도산 상품들이 높은 가격으로 잘 팔릴 정도이다.


https://www.holidayniseko.com  (전화번호: 0136-21-6221)

https://www.summerjapan.com

*전화번호는 일본에서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맵코드와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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