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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Mar 20. 2018

메이지 시대로의 시간여행|오타루

홋카이도 한 달 살기

2시간 30분의 비행을 마치고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New Chitose Airport, 新千歳空港)으로 들어섰다. 오후 5시가 넘어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건물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너무 늦지 않게 숙소로 가야 했기에 조급증이 슬슬 발동을 걸었다. 서둘러 짐을 찾아 JR 기차를 타기 위해 국내선 쪽으로 이동하는데, 마치 백화점 지하 식품관이라도 온 듯한 분위기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헤매던 식당 골목과 닮았다고나 할까? 배는 이미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으로 빵빵하게 불러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킁킁’거리며 지나쳤다. 기차 시간만 아니었으면 맛이라도 봤을 텐데. 쩝.   


출발 전부터 아내는 차를 렌트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항공료와 숙박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비용이 렌트비였다. 육아휴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상황. 회사에서 나오던 월급은 잠시 멈추고 국가가 주는 육아휴직급여로 대체가 된 상태였다. 매달 100만 원이라도 육아휴직급여를 받는 게 어디냐고 하겠지만 홑벌이 아빠의 마음은 월급과 육아휴직급여의 차이만큼 불안했다.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싶었다.


“렌트를 하면 숙소에서 쉬는 날도 돈이 나가는 거잖아. 난 이번에는 멀리멀리 찍고 다니는 것보다는 푹 쉬면서 여유롭게 보내고 싶어. 14년 동안 직장생활 하면서 열심히 달려왔잖아. 운전대가 반대인 것도 조금 부담되고. 중간에 일정 기간만 빌려서 주변을 돌아보면 되지 않을까?”


휴직한 아빠의 자존심 때문에 차마 돈이 아깝다는 말은 못 했다. 운전대 핑계에 사회생활 핑계까지 둘러댔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이상했다. 여행을 가는데 14년 직장생활 이야기는 또 뭐람.


만 6세 미만은 공짜!!


덕분에 우리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니세코로 가기 위해서는 오타루(Otaru, 小樽)에서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오타루까지는 기차가 수시로 다니지만, 니세코로 가는 기차는 드물게 있다. 저녁이 늦기도 했고 오타루를 하루 정도 보고 가려고 오타루 역에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1인당 1,780엔을 내고 오타루행 기차표를 끊었다. 만 6세 미만인 아이들은 모두 공짜다. 홋카이도 어디를 가든 만 6세 미만은 대부분 무료다. 주요 관광지는 물론이고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곤돌라 같은 시설도 거의 돈을 내지 않는다. 한 달 동안 홋카이도에서 생활하면서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된 부분이다. 시기상으로 첫아이 윤정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시작한 홋카이도 한 달 살기는 ‘신의 한 수’였다. 기차 요금 890엔 아꼈다고 신이 난 엄마 아빠를 보고 아이들도 덩달아 신났다. 시작부터 기분 좋은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타루를 향하는 기차는 드디어 미끄러져 나갔다. 출발시각이었던 18시를 단 1분도 지나지 않고 정확하게 출발했다. 역시 칼 같은 일본. 오타루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가야 한다.


잠시 빌딩 숲을 지나치는 듯하더니 이내 한적한 시골 철길을 달리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땅 크기는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크지만, 인구는 1/4 정도로 적고 그마저도 삿포로나 무로란(Muroran, 室蘭) 같은 도심 인근에 대부분 모여 산다. 덕분에 중심가만 살짝 벗어나도 인적이 거의 없는 편이다.


우리나라와 시차는 없지만 비행기로 2시간가량 동쪽으로 와서 그런지 해는 이미 땅거미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초면에 부끄러웠는지 붉은 얼굴을 금방 검푸른 하늘 뒤로 감추어버렸다. 낯선 객실에서 창문을 내다보던 아이들도 밤이 내려앉은 밖을 보는 듯하더니 이내 눈꺼풀이 같이 내려앉았다.  



첫날밤을 보낼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기차에서 충전을 마친 아이들은 침대가 무너져라 뜀뛰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폭발하는 아이들과 이대로 잠을 자기는 힘들 것 같아서 오타루의 상징인 오타루 운하 야경을 보러 산책에 나섰다. 오타루 운하는 삿포로와 가까운 항구도시로 과거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다. 물류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운하는 이제 그 기능이 멈추었지만 오타루를 관광명소로 바꾼 일등 공신이 되었다.


오타루 역에서 10분여를 걸어 오타루 운하에 닿았다.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불이 꺼진 도심 사이로 저 멀리 불야성인 거리가 보였다. 10시가 넘어가는 밤이었지만 운하 주변은 야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물건을 실은 배 대신 관광객을 태운 우든 보트가 운하를 지나다녔고 그 뒤로는 공장을 리모델링한 클래식한 음식점들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달력 사진에 종종 등장하는 겨울 오타루 운하는 눈이 두껍게 깔렸고 그 위로 가스로 밝힌 가로등이 분위기를 더하는 모습이었는데 여름 운하의 운치도 그 못지않았다. 따스한 빛의 가로등이 운하에 아른거리는 모습을 머릿속이 시원스레 비워질 때까지 멍하게 쳐다보았다.


밤이 내려 앉은 오타루 운하


“짝꿍, 떠나오기 전까지의 고민은 여기서 모두 비워버리자고.”

“응.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하고 왔으니 새로운 일상을 채워봐야지.”

“차를 빌리지 않은 게 조금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덕분에 오타루 야경도 봤다 그치?”

“그…… 그렇긴 하네…….”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먹고 1층 로비에 짐을 맡겼다. 나중에 다시 오타루를 올지 모르지만, 기왕 하루를 보낸 김에 니세코로는 조금 늦게 이동하고 주변을 더 보고 가기로 했다.


한국과는 온도 차이가 확연했다. 우리나라는 8월의 폭염으로 아스팔트에서 깨진 달걀이 프라이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기사를 읽고 홋카이도로 왔는데,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의 오타루는 같은 여름이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따끔한 태양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에 가까웠고 습하지 않았다. 조금 걷다가 더워질라치면 그늘에만 들어가도 금방 시원함이 느껴졌다.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의 날씨가 이렇게 다를 수가. 감탄을 이어 가며 오타루 역으로 갔다.  


오타루 하면 오르골로 유명한 오르골당이 빠질 수 없다. 1912년 지어진 오르골당은 1만 5천 점의 다양한 오르골이 전시되어 있다. 마치 영화 속 세트장 같은 느낌의 고풍스러운 내부 장식은 물론이고 2천 엔대부터 수백 엔에 이르는 다양한 오르골이 전 세계의 관광객을 오타루로 끌어들이고 있다.


오타루 오르골당은 미나미 오타루역에서 가깝다.


오타루 숙소에서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라 오르골당과 가까운 미나미 오타루(Minami otaru, 南小樽) 역으로 한 정거장 이동했다. 시골 같은 느낌의 한적한 마을을 지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르골당에 닿았다. 오르골당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어디선가 증기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오르골당 앞을 지키는 증기 시계(시계장인 레이먼드 선더스가 만듦)가 마침 정시를 알리고 있었다. 14년 전쯤 다녀왔던 캐나다 밴쿠버 개스타운에서 봤던 증기 시계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시계 소리와 함께 오르골당 안으로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엄청난 종류의 오르골이 붉은 조명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전혀 살 마음이 없이 들어간 오르골당인데 이건 안 사고는 배길 방법이 없었다. 안 사야 할 이유는 단 한 개도 못 찾았는데 사야 할 이유는 눈에 보이는 오르골 수만큼 떠올랐다. 순식간에 머릿속에는 지인들이 줄을 섰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줄을 서서는 자기가 먼저라고 싸움이 났다. 마음 같아서야 다 주고 싶지만 지금 선물을 사면 여행 내내 가지고 있어야 했다. 가격도 부담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마땅히 자기가 왜 받아야 하는지 설명 못 한 사람들은 돌려보내고 몇몇만 남겼다.


가격은 2천엔(약 2만원)부터 시작한다.


자기를 사달라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오르골)을 못내 남겨두고 오기가 마음 아팠지만, 지금은 휴직 중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오르골당에서 나와 오타루 운하 방향으로 걸었다. 왕복 2차선의 도로 양옆으로 오래된 전통가옥과 신세대 프랜차이즈 건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지어 있었다. 오르골당에서 오타루 운하를 이어 주는 ‘이로나이 거리’에는 일본 메이지 시대부터 세워진 건물들이 그 원형을 지키며 남아 있어 건축학적으로 귀히 관리되는 곳이다. 얼마 전 다녀왔던 군산의 근대사 거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한쪽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 한쪽은 그들의 번영했던 추억이 서린 곳.  


일본 메이지 시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로나이 거리'


묘한 분위기를 느끼며 오타루 운하에 도착했다. 운하는 어젯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산책하듯 운하를 지나 숙소에 돌아왔다. 조금 더 오타루를 즐기고 싶었지만, 띄엄띄엄 있는 니세코행 기차를 놓치면 꼼짝없이 하루를 더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마음이야 그러고도 싶었지만 지갑은 허락하지 않았다.


오타루 운하




<Travel Tip>


항공권 준비하기

홋카이도는 최근 많은 저가 항공사가 취항해서 가격이 내려갔다. 성인 기준 왕복 항공권이 최소 40만 원 이상의 가격에서 저가 항공사들의 경쟁으로 왕복 20만 원대까지 저렴(?)해졌다. 아이가 24개월 미만이라면 비행기는 무료로 탈 수 있기 때문에 3+1명 기준으로 70만 원대면 네 식구가 홋카이도를 왕복할 수 있다. 전보다는 많이 저렴해지긴 했어도 휴직한 상황이다 보니 부담이 적지는 않았다. 게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숙소비용은 줄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항공료라도 줄여야 했다.


저렴하게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마일리지. 항공사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신용카드를 주력으로 사용한 덕분에 마일리지 포인트가 제법 모여 있었다. 생활비를 줄여주는 카드도 많이 있고 효율적인 연말정산을 위해 현금과 직불카드를 적당히 섞어 쓰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는 오로지 항공사 마일리지 신용카드만 사용한다. 한 달에 2~3만 원 할인받는 것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 돈을 할인받았다고 따로 모으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언젠가 여행이라도 떠나려고 하면 항공료가 큰 부담 중 하나로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 적금(?)이라 생각하고 오로지 마일리지 적립 카드만 사용한다. 마일리지를 더 준다는 카드가 생기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갈아타기도 한다.


홋카이도 길거리 음식 - 유바리 메론과 생옥수수


신치토세 공항에서 니세코로 이동하기

신치토세 공항에서 니세코로 이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렌트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니세코에서 주변 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렌트가 필수이다 보니 홋카이도 도착 후 공항에서부터 렌트를 하는 것이 좋다. 공항에서 니세코는 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으로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서 니세코로 이동할 수 있다. 기차는 오타루나 삿포로에서 니세코행으로 갈아타면 된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타루까지는 90분 정도 걸리고, 오타루에서 니세코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타루까지는 기차가 많은 편이지만 오타루에서 니세코로 가는 기차는 띄엄띄엄 있다.

버스는 항상 있는 것은 아니고 겨울 스키 시즌과 여름 관광 시즌에만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갈아타지 않고 기차보다 탑승 시간이 짧아 좋다. 하지만 운행 횟수가 적고 항공사 일정에 따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아시아나항공은 오후 5시 도착이라 니세코 버스와 시간이 맞지 않는다.


스키를 위한 겨울 여행이라면 렌트보다는 버스가 좋겠고(눈이 오면 정말 눈밖에 없는 세상으로 변한다. 계속 쌓이고 녹지 않다 보니 차선을 구별하기도 어렵다), 주변 관광 위주인 여름 시즌에는 렌트하는 것을 추천한다.


니세코버스: www.nisekobus.co.jp

JR기차: www.jrhokkaid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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