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머리에]
어느새인가부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일일이 장황하게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인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귀찮음 때문일 것이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말이 행동을 앞서는 일들이 자주 생겨서이기 때문이다.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정확한 직관과 통찰만을 글에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글을 쓸 때면 덜어내야 할 감상과 주관적인 느낌이 자꾸만 가미된다.
그리하여 결국 퇴고한 글 속의 나와 현실을 사는 나 사이의 적잖은 괴리가 생기게 된다.
나의 삶에 대해 긴 글을 쓰는 것이 주저스러운 요즘이지만, 무엇보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이번 (격리의) 경험이 뜻깊기도 하고 기록으로써도 꼭 남겨두고 싶어서 위의 걱정을 뒤로 한채 조금은 소상한 내용의 글을 몇 자 적어보게 되었다.
사실 본 글을 쓰고자 했던 동기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단지 난생처음 해보는 '격리'라는 경험 속에 꼭 기록하고 싶은 생각들이 몇 가지 있어서이다. 그 몇 가지 생각은 제목에 친절히 나열해두었다 (쉼과 이웃).
우선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지난 토요일 (3월 11일) 모임에 함께 동석했던 이로부터 코로나 확진 연락이 전해왔고, 지체 없이 집 인근 병원에 가 신속항원검사로 나의 상태를 살폈다. 결과는 공교롭게도 '양성'이었고 일요일인 다음날 오전 일찍 강동구 보건소의 기다란 검사 행렬을 기다려 PCR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일찍 날아온 통지 문자엔 'PCR 검사 결과 양성'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격리 기간은 일요일 (검체채취일)부터 다음 토요일까지. 신속항원검사 양성 판정 후 연구실 교수님께 곧장 해당 상황에 대한 간략한 전달을 의연하게 해 놓았지만, 막상 PCR 확진 후 일주일에 가까운 격리기간이 갑작스레 내게 도래하니 여러 생각이 많아졌다.
실험을 토대로 모든 결과를 분석하고 다음 결과를 예측하는 실험실 연구원의 업무상 일주일의 자가격리는 모든 업무로부터의 중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실험실에서 수학했던 7년의 시간 동안, 교회 수련회 및 건강상의 이유 혹은 잠깐의 휴식을 명분으로 한 2-3일의 휴가는 요청해본 경험이 있어도 일주일의 공백은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일주일간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시키지 못하도록 자택에 격리됨과 동시에, 내 몸에 각인되다시피 했던 익숙한 일상과의 분리도 함께 이루어졌다.
쉼
우선 익숙한 일상과의 분리와 함께 내게서 가장 먼저 빛을 발하며 (감추었던) 모습을 드러낸 단어는 '쉼'이었다. 어떤 목적을 가진 행위가 전혀 불필요해진 상황에서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직 회복이 채 되지 않은 몸과 장소를 이탈할 수 없는 통제 속에서 자유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7년 동안 쉬지 않고 작동했던 일상의 관성이 사라진 '정지'의 상태는 정말이지 가볍고 자유로웠다.
잠깐 과거의 이야기를 하자면, 실험실에 입학을 하고 2년이 채 차기도 전에 위에 계신 모든 선배가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는 상황을 경험했었다. 그리고 그 후 곧이어 들어온 후배 한 명과 나는, 어설프고 서투른 실력으로 실험실의 기초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게 '실험실 선배'이자 '랩장 (Laboratory, 실험실의 방장)'으로서의 첫 시작이었다.
그 후 6년간 줄곧 실험실의 제일 오랜 선배로, 연이어 들어오는 후배들을 받고 가르쳐주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들을 지내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실험실을 거쳐갔고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실험실 선배가 되고 6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책임의 자리는 가끔 내게 답답하고 또 때로는 가혹한 시간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특히 예기치 못한 상황에 생기는 멤버들 간의 미묘한 불화와 갈등은 내게 필연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다 (그러나 상황은 언제나 건강하게 마무리되었다).
7일의 격리는 내게 '부여된 자리' 그리고 '역할의 당위성'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로 인해 '나'라는 존재 자체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소박하지만 잊고 있던 취미들을 하나, 둘 하며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학교에서 휴가를 요청하여 며칠 쉴 때면 '휴가'가 주는 무언의 압박과 남은 휴가 기간에 대한 쫓김으로 조금은 불안한 시간을 보냈었는데... 어쩌면 내게 다른 어떤 행위보다 당장 필요하고 또 중요했던 진정한 '쉼'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쉼'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지난 7년 동안 지켜온 일상 덕이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마치 길고 긴 달리기 끝에 벌컥 들이키는 시원한 생수 한 모금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빌 에반스가 생전, 자신의 친형과 함께 진행한 그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엄격한 형식이 있을 때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가 의미를 갖는 것이지." 아마 '재즈'라는 장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나타내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재즈'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즉흥과 변주들이 클래식이라는 형식 안에서 시도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쉼'과 '자유'도 그렇다. 매일같이 지켜오고 사수했던 일상의 자리가 있어야만, 그 안에서 누리는 '쉼'과 '자유'의 시간도 온전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자유에 대해) 생각으로만 해오던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7일의 격리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7일의 격리시간이 거의 지난 지금, 더 확고해졌다.
이웃
그리고 7일의 격리시간 동안 새롭게 다가온 또 하나의 것은 나를 둘러싼 '이웃'의 존재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공간에 내가 없음으로 나의 부재 (不在)를 느끼며 나를 생각해주는 이들로부터의 연락이 새롭고 소중했다.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실험실원들로부터는 매일마다 안부와 연락을 받았는데,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이 있었다. 그들이 나의 이웃이고 내가 그들의 이웃인 것을 알 수 있어서 감사했다.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대한 이해와 용납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의 부족과 연약함에 대한 인지가 동시에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사랑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건강한 이웃이 될 수 없다. 사랑을 건강하게 받는 것 또한 좋은 이웃이 되기에 중요한 조건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들에게 좋은 이웃일까? 적어도 내 주변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좋은 이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서, 외롭지 않은 7일의 격리 시간이었다.
이 밖에도 7일의 격리가 내게 던져준 크고 작은 여러 질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이다. 또 언젠가 난생처음 겪어보는 경험들로 그 나머지 질문들에 대한 정리도 불현듯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겐 아주 특별한 7일의 격리 시간이었다. 이제 더욱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일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격리 해제를 6시간 앞두고 이 글을 마친다. 아침부터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었는데, 글을 마친 지금 창 밖의 풍경이 공교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