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대화의 아름다움
아는 사람 둘이 곧 부부가 된다. 나는 결혼을 안 해봐서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분들께 건넬 덕담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혼여행 책을 추천하는 것 정도 뿐이다. 신혼여행 역시 안 가봐서 그 상황에서 책이 읽히는지도 모르겠지만(기혼자 여러분 어떤가요?) 나는 [음악의 기쁨]을 권했다. 웬 음악이냐 싶으시겠지만 내 쪽에서도 이유는 있다.
우선 제목이 좋다. 신혼여행의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나 [인간이 초대한 대형참사] 혹은 [계속해서 실패하라]같은 걸 추천하는 건 아무래도 심술궃다. 저 세 권의 책은 아주 훌륭할 뿐 아니라 결혼생활에 대해 깊은 교훈을 줄 수도 있지만 나중에 천천히 읽어도 된다.
내용도 좋다. 이 책은 프랑스의 음악학자 롤랑 마뉘엘이 피아니스트 나디아 타그린과 함께 서양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재미와 의미 사이의 미묘한 선을 훌륭하게 잡아 유려하게 끌고 간다. 정보와 농담, 재미와 의미를 함께 전달하는 건 무척 어려운데 롤랑과 나디아는 친근한 대화로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둘의 신혼여행지는 이 책의 무대인 유럽이라고 들었다. 유럽에서 유럽 음악 책을 읽는 건 신혼여행이 아니어도 해볼 만한 호사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이 책에 음악의 기쁨만 있는 건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대화가 원활하게 고조될 때 떠오르는 기쁨도 있다. 롤랑과 나디아는 오랜 커플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서로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재능을 존경한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므로 이들이 서로를 약올리거나 비웃을 때도 페이지의 분위기는 내내 유쾌하다. 세상엔 여자가 남자보다 잘 하는 것과 그 반대가 있다. 둘은 그 차이를 알고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며 음악의 아름다움이라는 모호한 세계로 들어간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아주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도달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져 온다. 결혼을 해보지는 않았어도 이런 관계는 꽤 좋아 보인다. 신혼여행 도서로 이 책을 떠올렸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작고 가볍고 표지가 예쁘고 1~4권으로 나눠서 출간되어 들고 다니며 읽기 편하다. 짐을 줄이고 싶으시다면 유럽 음악사를 다루는 2권과 3권만 가져가도 되지만 괜찮다면 네권 다 가져가시는 것도 좋겠다. 둘은 부부니까, 둘이 두 권씩 챙기면 한결 나을 테니까. 책과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신혼여행이 아니어도, 아니 여행이 아니어도 나눠 보시기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