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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Nov 11. 2017

미쉐린 가이드와

알고 먹으면 더 맛있(을 수도 있)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

2011


<지로의 꿈>에 나오는 오노 지로의 인생과 그의 식당 스키바야시 지로에는 우리가 일본 문화에 가진 모든 판타지가 다 있다. 부자 동네, 10석 규모의 초소형 점포, 전화 예약만 받는 엄격함, 1인당 3만엔이라는 고가 정책, 그 엄격함에도 아랑곳없이 대단한 인기, 턱이 빠질 정도로 맛있는 초밥, 그리고 그 모든 세계를 만들어낸 쪼글쪼글한 고집쟁이 노인. 장인정신에 대한 르포르타주인 동시에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포르노다. 


아무튼 장인이 되려면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집중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노 지로는 70년 이상 초밥을 쥐었다. 영화 속 그는 꿈에서도 초밥의 환영을 본다. 요즘같은 고용 불안정성의 시대에 "기술에 통달하기 위해 당신의 인생을 헌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한 일본인은 경전 수준의 일반론을 이야기하지만 일본의 일반론은 세이코의 고급 시계처럼 일본 안에서만 통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시계를 사러 일본까지 간다. 교훈은 명확하다. 수준 높은 시장에서 최고 수준에 오르면 확실히 살아남는다. 오노 지로 역시 미쉐린의 별 3개를 받았다. 




셰프의 테이블

2015~


넷플릭스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시리즈. 한 에피소드가 요리사 한 명의 이야기다. 2017년 4월 현재 시즌 3까지 나와 있으며 한 시즌에는 6개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즉 지금까지 18명의 요리사가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셈이다. 한 사람이 자기 요리와 자기 이야기만 들려준다면 이야기의 재미가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이갸기가 가치를 가지려면 각 요리사 자체에 값진 가치를 가져야 한다.


<셰프의 테이블>은 그 방면에서 확실하다. 이 시리즈에 나온 요리사들 중 11명이 '세계 50대 최고 레스토랑 시리즈'에 올랐다. 인물 면면도 제각각이다. 다큐멘터리를 요리라고 치면 <셰프의 테이블>은 어디서 저런 걸 갖고 왔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다. 시즌 1에 나온 댄 바버는 요리사인 동시에 농부다. 시즌 2의 기간 아난드는 인도 요리사임에도 자기 식당에서 치킨 마살라를 빼버렸다. 시즌 3에는 스스로를 요리사로 생각하지 않는 한국의 정관 스님까지 나온다. 이 다큐멘터리의 효과는 요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 이상이다. 요리라는 소재로 관심을 끌고 요리사라는 주체를 집어넣어 줄거리를 만들어내며 영상과 소리로 사람들을 붙잡아둔다. 요리로 만든 파생상품라는 점이 미쉐린 가이드와의 공통점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

2009

츠지 요시키, 중앙북스

세계, 미식, 테크놀로지같은 단어가 책의 제목에 함께 쓰였다는 점에서 일본인이 쓴 책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일본인은 요리에서부터 축구에까지 어떤 일의 기술적 세부에 집착한다. 그렇게 찾아낸 규칙을 세계라는 큰 무대에 끼워 맞춰본다. 일본만이 하는 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유독 많이 하는 일이기는 하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는 작가가 미쉐린 가이드에 자기 이름을 올린 요리사 6명을 만나 그들의 성공 방식을 듣고 옮긴 책이다. 작가 츠지 요시키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의 스타 셰프 6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스타 셰프는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 긍정적인 자세를 가졌다. 어떤 일에서든 교훈을 이끌어낸다. 자기의 고집만큼이나 손님의 취향도 중요하다. 미쉐린 가이드는 미식 분야에서의 확실한 인증이다. 그 인증을 받은 사람들의 기준을 보다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잘 응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뛰어난 응용력 역시 스타 셰프의 덕목이다.




파인 다이닝의 첫걸음

2017

콜린 러시, BR미디어

처음 가본 사람에게 제대로 된 프렌치 레스토랑은 실험실 수준으로 복잡하게 느껴진다. 도구도 너무 많고 잔도 너무 많고 식탁보는 새햐얘서 빵 부스러기 하나만 흘려도 화선지 위 먹물처럼 눈에 띈다. 메뉴는 읽기도 힘든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나 빼고 15년차 단골처럼 웨이터와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이게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의 고민은 아닌 모양이다. <파인 다이닝의 첫걸음>은 미국에서 나온 책이니까.

<파인 다이닝의 첫걸음>은 이름처럼 어떻게 하면 파인 다이닝을 잘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안내서다. 원래 '파인 다이닝'이란 어려운 법이다. 미국도 아닌 프랑스 등의 유럽 산물인데다 잘 배우려면 돈과 시간과 조기교육이 필요한 사치 문화이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익혀 두면 평생 즐거워질 수 있는 새로운 취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파인 다이닝의 첫걸음>과 유럽판 미쉐린 가이드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훌륭한 휴가일 것이다. 마침 올해 한국어 개정판이 나왔다.





180일의 엘불리

2012

리사 아벤드, 시공사

미각혁명가 페란 아드리아

2011

만프레드 베버-람베르디에르, 들녘


미쉐린 가이드는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사람이 페란 아드리아다. 다른 미쉐린 가이드의 스타들이 그렇듯 페란 아드리아와 그의 레스토랑 엘 불리 역시 신화적인 스코어와 컬트적인 운영으로 유명하다. 엘 불리는 미슐렝 레스토랑이 밀집한 대도시가 아니라 스페인 북부 로사스에 있다. 1년에 6개월만 영업한다. 식사는 5시간동안 지속되며 손님에게는 메뉴 선택권이 없다. 그런데 연간 예약자가 50만 명에 달한다. 왜일까.


엘불리와 페란 아드리아의 신화를 이해하기 좋은 책이 몇 권 나와 있다. <180일의 엘불리>는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엘불리가 문을 연 6개월 동안 이곳을 실제로 취재하고 쓴 책이다. <미각혁명가 페란 아드리아>는 프랑스인 저널리스트가 페란 아드리아에 대해 쓴 책이다.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180일의 엘불리>는 유럽 문화를 선망하면서도 종종 딴죽을 거는 미국인 특유의 자격지심이 백미다. <미각혁명가 페란 아드리아>는 아름답지만 듣다 보면 좀 그만 해줬으면 싶은 프랑스인 특유의 만연체를 느낄 수 있다. 




감정의 법칙

2017

피에르 가니에르, 카트린 플로이크, 한길사

미쉐린 가이드의 역할 중 하나는 '스타 셰프'라는 걸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다. 미쉐린 가이드가 낳은 스타 셰프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피에르 가니에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이 서울에 있으니까. 피에르 가니에르는 서울 뿐 아니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영국 런던, 러시아 모스크바, 일본 도쿄, 홍콩, 두바이 등에도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을 냈다. 이연복을 방불케 하는 확장성이다. 가니에르의 레스토랑 역시 아주 좋은 평가를 받는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서 별 2개를 받았다. 

<감정의 법칙>은 그 유명한 피에르 가니에르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프랑스의 출판사 대표 카트린 플로이크가 피에르 가니에르와 대담을 세 차례 한 후 책으로 만든 것이 <감정의 법칙>이다. 가니에르는 이 책을 통해 요리사로서의 자신 뿐 아니라 레스토랑 경영인(저렇게 레스토랑이 많으니 당연히 경영인이다)으로의 자신을 말한다. 고급 레스토랑은 예술적인 요소를 가져야 하는 상품 판매소다. 이 특수한 조건 속에서 성공하려면 예술적 감각과 상업적 두뇌를 모두 갖춰야 한다. 물론 그러기는 쉽지 않으며, 피에르 가니에르는 그 어려운 일을 국제적으로 성공시킨 사람이다. 그의 책을 읽어볼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Noma: Time and Place in Nordic Cuisine

2010

Rene Redzepi, PAHIDON


<노마, 뉴 노르딕 퀴진의 비밀>

2016


뛰어난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다. 사람들의 관심이 몰린다. 예약이 폭등한다. 조리법에 대한 책을 낸다. 책까지 잘 된다. 성공의 마지막 증명서는 레스토랑을 주제로 한 영화다. 미쉐린 가이드가 촉발시키는 레스토랑 흥행의 꿈길이다.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는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그랜드슬래머다. 책과 영화가 다 나왔다. <노마, 노르딕 퀴진의 시간과 장소>는 노마의 쉐프 르네 레드제피가 만든 노마의 요리 책이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서문과 200장의 컬러 사진으로 구성된 호사스러운 책이다. 레드제피는 출간 영상에서 "이 책은 음식과 제품에 대한 책이지 사람에 대한 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책 <노마>는 2010년, 레드제피가 32세일 때 나왔다. 


5년 후 그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영화 <노마: 뉴 노르딕 퀴진의 비밀>에는 사람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영화 <노마>는 레드제피가 역경을 딛고 노마를 다시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속의 레드제피와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최고로 인정받는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재능과 집착을 보여준다. 빼어난 재능과 광적인 집착은 그 자체로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미쉐린 가이드도 그 사실을 알 것이다.




Eloges de la cuisine française

1933

Edouard Nignon

한국어로 '프랑스 요리에 바치는 찬사'가 되는 이 책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그때도 이런 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타 셰프 에두아르 니뇽이 쓴 요리 책이다. 그에게 요리는 정말 삶의 전부였다. 9살 때 처음 부엌에 들어가 거기서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황제를, 러시아에서는 짜르를 위한 요리를 만들고 런던에서는 클래리지 호텔의 마스터 쉐프가 되었다. <프랑스 요리에 바치는 찬사>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33년에 나온 책이다. 평생 요리밖에 모르던 사람이 삶을 돌아보며 쓴 요리법이다. 이 책은 요리책임에도 아름다운 표현으로 유명하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취미가 요리책 읽기였고 이 책의 레시피 몇 개를 외운다는 에피소드가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도 나온다. 불교의 시작에 인도가 있듯 파인 다이닝의 시작엔 결국 프랑스가 있다. 미쉐린 가이드를 통해 파인 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치솟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나저나 요리책에 '찬사'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 요리책의 아름다운 레시피를 줄줄 외우는 전직 대통령도 한결같이 프랑스적이다. 프랑스란...



매거진 B 미쉐린 가이드 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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