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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l 08. 2018

너무 추운 날을 빼고

김시덕의 서울 선언을 읽고



김시덕 선생(이하 이름만 표시)의 <서울 선언>을 읽고 서평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이 책이 여러 이유로 내 여러 부분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을 우선 멈추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었다. 어떤 문단들은 몇 번씩 다시 보기도, 특정한 부분만 펼쳐서 한 번만 더 읽어 보기도 했다.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반성하기도 했다.


<서울 선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20세기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가 21세기에 말하는 20세기의 서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조선왕조의 한양 범위를 넘어서는 서울을 말한다. 위정자의 서울이 아니라 노동자의 서울을, 살아남은 자의 서울이 아니라 사라진 자의 서울을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반성했다. 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보통 잡지에서 말하고 다루는 서울이란 강남3구와 시내와 한남-이태원 권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생 그곳이 아닌 서울에서 자란 나는 궁금했다. 거기만 서울인가, 왜 이런 곳만 서울의 정체성이 될까. 대부분의 사람이 한강과 남산에서 꽤 떨어져 사는데 과연 한강이 서울을 대표하고 남산이 서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생각만 했다. 김시덕은 그 생각을 품고 움직이고 글을 써서 책을 냈다. 대단한 일이다.


일 때문에 김시덕과 한 달에 한번씩 만났다. 그는 고문서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 필자였고 나는 그 원고를 받고 고문서 사진촬영을 진행하는 편집자였다. 그때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는 늘 대중교통을 타고 걸어서 왔다. 퀵서비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에 어긋난다며 늘 고문서를 직접 들고 왔다. 촬영이 끝나면 “온 김에 좀 걸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늘 다른 방향으로 걸어서 사라졌다. 몇 번은 딸이 좋아하는 빵을 사러 빵집에 들렀다. 원고는 스마트폰으로 생각날 때마다 쓴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걸 보고 나서 나는 일로 핑계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이 많다. 책 한 권을 내기도 예전보다는 쉬워진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책을 낸다. 반면 계속 걸어 다닌 사람이 쓴 책은 별로 읽지 못했다. 걷는 사람은 잘 쓰지 않고 쓰는 사람은 잘 걷지 않는다. 걸어다닌 것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도 별로 없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고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머리로 생각하고 뽑아낸 책이 재미있기는 무척 어렵다. 게다가 생각을 입력해서 출력물로 만들어낸다는 일의 기술적 장벽이 무척 낮아졌다. 앞으로 이런 책이 재미있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반면 직접 몸을 움직이고 자기 눈으로 보고 느낀 글에는 진위와 유쾌와 불쾌를 떠난 생동감과 에너지가 있다. 김시덕의 책에도 그 기운이 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몸을 움직이고 성실히 기록하면 이런 게 나온다. 앞으로 안일해질 때마다 이 책을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김시덕이 지난 겨울에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 생각난다. ‘너무 추워서 도저히 답사를 할 수 없습니다’같은 글이었다. 도저히 답사를 할 수 없는 기상을 제외하고 쉴 새 없이 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책을 만드신 김시덕 선생께 아낌없는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김시덕 선생께서 귀여운 편지지에 사인도 해 주셨다. 자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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